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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정오 시인 / 층층나무 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1.

이정오 시인 / 층층나무 꽃

 

 

투명해진다

아파트 담장에 부딪쳐 돌아오는 가냘픈 뻐꾸기 울음

고요는 깨지고

어머니께 가지 못하는 그리움의 통점이

새벽 4시에 멎는다

 

이 시간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닮은 할머니 한 분

어디를 가시는 것일까

베지밀 한 병 사려고 허리춤에서 꺼내는

돌돌 말린 비닐지갑

지갑을 풀자 습기 찬 비닐 속에서

녹슨 동전의 울음보가 터진다

 

전깃줄에 앉아 울던 뻐꾸기가

내 분주한 일상의 핑계를 물고 날아간다

어머니의 새벽을 깨울까 염려되어

나는 할머니께 공손히 인사하고

뻐꾸기 비행방향과 등지고 앉는다

 

뻐꾸기 울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날갯짓에 창밖 층층나무 꽃만 후드득 떨어져

환한 꽃길이 되었다

 

 


 

 

이정오 시인 / 데이트

 

 

자르는 게 커트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야

얼마나 아름답게 남기느냐

그게 커트였어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어

오늘 커트 잘했어

고마워

 

-계간 <다시 올문학> 2020년 가을호

 

 


 

이정오 시인

아주대학교 영어영문과 졸업. 2010년 계간《문장》신인상 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에서 여자 냄새가 난다』 『층층나무편의점』이 있음. 안성문화연구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