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서 시인 / 기린 울음
기린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동물의 왕국에서 큰 나무 잎새를 말아 넣는 기린이 어딘가 기형적으로 보이는 것은 한 번도 그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함부로 토해내지 못한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길어졌을 목
'기린' 하고 부르는 혀끝이 자꾸만 안으로 치닫는 것은 방목할 수 없는 그리움이 내 안에도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석양의 지평선에서 음머- 하고 터뜨리고 싶은 그 소리의 가엾음으로
타는 노울
고영서 시인 / 서시천 코스모스
어느 봉기가 이리 아름다우랴
큰 물이 져서 큰 물이 져서
기르던 소만 떠 내려간 게 아니라 손때 묻은 세간살이 텃밭 푸성귀 파이고, 찢히고 무너지고 등등
잠긴 집의 온기가 돌아오기까지 한가위는 恨가위
넋놓고 하소연하려도 마스크부터 씌우고 보는 세상 아닌가
추운 여름이 한 순간에 흘러 갔고나
바람이나 쐬자 하고 터덜터덜 둑길 걷던 산동아짐
어디서 이런 존 냄새가 난다냐 숨 깊이 들어 마시고는 오매오매 이 기특한 것들, 징한 것들 금메 안 쓰러지고 피어나리라고
애지중지 손녀딸 볼 쓰다듬데끼 어루만졌다는 그 코스모스
일제히 손 흔들고 있다 함성 소리가 노고단을 넘어가고 있다.
- 계간 <창작과비평> 202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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