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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경리 시인 / 사람의 됨됨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6.

박경리 시인 / 사람의 됨됨이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 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에서

 

 


 

 

박경리 시인 / 우주만상 속의 당신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갔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 넝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묵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박경리 시인.소설가

1926년 경남 통영시 출생. 본명은 박금이. 1950년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 졸업. 1955년 단편소설 '계산' 등단. 1950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 1999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1997.4 호암재단 이사. 1957 3회 현대문학 신인상. 1959 3회 내성문학상. 1965 2회 한국 여류문학상. 1972 월탄문학상. 1990 4회 인촌상. 1992 보관문화훈장. 1994 유네스코 서울협회 선정 올해의 인물. 19966회 호암상. 2008.5 금관문화훈장. (1926~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