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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명란 시인 / 달콤한 소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5.

최명란 시인 / 달콤한 소유

 

 

찢어진 내 청바지에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게도 꽃들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활짝 핀 꽃대 위에 달콤한 비가 내릴 것이다

개구리는 지천에서 베이스 톤으로 울고

장대비는 꽃들을 흠뻑 적시고 짱짱히 일어설 것이다

돌담을 붙잡고 일어서는 담쟁이처럼

나도 장대비를 붙들고 비를 따라 일어설 것이다

건조한 목구멍을 비에 촉촉 적시며

아직 눈뜨지 못한 새끼들을 오글오글 키울 것이다

걸음 서툰 노인이 눈앞으로 지나가도

늙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희미해져가는 햇빛에 희망을 걸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흐르는 강물을 함께 바라볼 것이다

결혼식 날 소란 속에 열렬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최명란 시인 / 지퍼에게

 

 

내 몸은 언제나 당신의 정반대 방향에서 뜨겁고

잠이 깨면 당신과 나는 등과 등을 맞대고 있다

왜 그런가를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질문이 아니다

 

당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별이 되는 동안

꽉 물리지 않은 나는 오늘도 혼자 고꾸라진다

 

당신은 정지되어 있고

나 혼자 늙어가다가 어느 날 문득

당신이 내게 나이를 물어온다면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난 그날처럼 살짝 수줍어질까

 

아귀를 꽉 닫아야 이빨이 더 단단해지는

지퍼가 지퍼에게

 

 


 

최명란 시인

1963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자명한 연애론』 『명랑 생각』 『이별의 메뉴』가 있음. 동시집 『하늘天 따地』 『수박씨』 『알지 알지 다 알知』 『바다가 海海 웃네』 『해바라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