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시인 / 붉은 화첩
해 지는 저녁이 가면을 쓰고 꿈틀거린다 어둠 속 가면이 백기를 든 골목으로 사라지면 진실을 고백할 때다
해넘이 찰나가 해돋이 찰나를 이해하듯 바오바브나무는 성장기를 펼치며 혹한 시절의 나이를 꺼내서 매만진다
저녁이면 어떻고 새벽이면 어떤가 수백 년 뒤 미국이면 어떻고 수백 년 뒤 프랑스면 어떤가 가슴이 텅 빈 여기 깊숙한 숲에서 못생기고 뚱뚱한 동화를 쓰면 또 어떤가 서로가 통했다면 해지는 저녁이지
해 없는 동안만은 농한 기도로 고통을 덜어낼 것 해가 떠 있는 동안만은 일터에서 착한 공기로 서로의 거리를 배우며 사랑하기
해 지는 광경은 고통이면서 기쁨이다 시공을 초월한 불사의 사다리가 길어지는 강가 바오바브나무 표정이 축축하다
바오바브나무야, 더는 자책하지 마 너는 너일 뿐, 해지는 저녁은 내 마음이야
이강하 시인 / 오래된 나무 이야기 1
구름을 피워낸 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무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로 자라난 밑동의 가지 어린 가지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할까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는 또 어떤 마음으로허공을 꿰매서 저녁의 이불을 만들까 저 나무는 전생에 누구였을까 구름이었을까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지면 운지버섯을 피워낸 것일까 진정 영혼의 소리를 남겨줄 나이라서저리도 겹겹 아름다울까 가만히 벚나무 밑동을 매만지니 내 영혼의 소리도 구름 되어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신발은 무겁고 몸은 더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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