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향 시인 / 내 마음의 구치소
나는 구치소 푸르른 담벽을 끼고 산다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을 뿐 어떤 법조항으로도 얽어맬 수 없었을 뿐 저 날아다니는 새들은 알고 있을 거야 허공에 뜬 흰 감시탑을 지나노라면 내 안에도 가시철조망 높이 솟아 있어 움찔 놀라 멈춰 선다 내가그토록 오래된 미결수였다니! 저기 혹 내게 면회 온 사람? 철거덕 길고 긴 복도를 지나 쇠창살을 열고 나가면 소스라치게 그리웠던 햇빛 맨드라미 채송화 푸르른 담벽 아래 바람 한 페이지 받쳐들고 있다
조연향 시인 / 초원의 빛
별들이 기둥과 벽을 세워 천막을 치고 난롯불 피워놓았네 장작은 장미꽃처럼 불타오르다 쉬이 사그라지고 말아 게 눈 감추듯 피 냄새를 감추며 짐승의 살점을 뜯을 때, 마소들의 울음소리가 소리 없이 검은 산등성이를 넘고 있었네 이 세상에, 허기보다 진한 것은 피도 아니고, 그 무엇도 없어라 오늘 저녁 만찬에는 또 얼마나 뜻 모르는 희생양 내가 살고 네가 죽으니 어느 비탈진 후생, 또 우리 젖은 눈망울로 다시 만나서 너를 살리려 내 피를 뿌릴 것이니 문득 선법의 한 가르침 떠오르네 생명이란 실체가 없어, 살점을 태우는 저 장작불의 연기처럼 연기에 있다고 하였으나, 너와 나 결코 없는 것이라고 비웃어보네 다만, 지금 여기 증명할 수 있는 별조차 깜박거리는 불빛일 뿐 끌어당기지 않아도 밤하늘은 캄캄한 게르 지붕을 덮네
-『바이칼에서 몽골까지 열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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