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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연향 시인 / 내 마음의 구치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5.

조연향 시인 / 내 마음의 구치소

 

 

 나는 구치소 푸르른 담벽을 끼고 산다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을 뿐 어떤 법조항으로도 얽어맬 수 없었을 뿐 저 날아다니는 새들은 알고 있을 거야 허공에 뜬 흰 감시탑을 지나노라면 내 안에도 가시철조망 높이 솟아 있어 움찔 놀라 멈춰 선다 내가그토록 오래된 미결수였다니! 저기 혹 내게 면회 온 사람? 철거덕 길고 긴 복도를 지나 쇠창살을 열고 나가면 소스라치게 그리웠던 햇빛 맨드라미 채송화 푸르른 담벽 아래 바람 한 페이지 받쳐들고 있다

 

 


 

 

조연향 시인 / 초원의 빛

 

 

별들이 기둥과 벽을 세워 천막을 치고

난롯불 피워놓았네

장작은 장미꽃처럼 불타오르다 쉬이 사그라지고 말아

게 눈 감추듯 피 냄새를 감추며 짐승의 살점을 뜯을 때,

마소들의 울음소리가

소리 없이 검은 산등성이를 넘고 있었네

이 세상에, 허기보다 진한 것은

피도 아니고, 그 무엇도 없어라

오늘 저녁 만찬에는 또 얼마나 뜻 모르는 희생양

내가 살고 네가 죽으니

어느 비탈진 후생, 또 우리 젖은 눈망울로 다시 만나서

너를 살리려 내 피를 뿌릴 것이니

문득 선법의 한 가르침 떠오르네

생명이란 실체가 없어, 살점을 태우는 저 장작불의 연기처럼

연기에 있다고 하였으나,

너와 나 결코 없는 것이라고 비웃어보네

다만,

지금 여기 증명할 수 있는 별조차 깜박거리는 불빛일 뿐

끌어당기지 않아도 밤하늘은 캄캄한 게르 지붕을 덮네

 

-『바이칼에서 몽골까지 열흘』에서

 

 


 

조연향 시인

경북 영천에서 출생, 경희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199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와2000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 『제1초소 새들 날아가다』, 『오목눈숲새 이야기』 『토네이토 딸기』등과 연구서 『김소월 백석 민속성 연구』가 있음.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강사. 육군사관학교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