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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재근 시인 / 무중력 화요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4.

김재근 시인 / 무중력 화요일

 

 

바닥이 없는 화요일

슬로우 슬로우

자신의 음성이 사라지는 걸 본다

발이 가는 식물의 잠, 초록의 잠 속처럼

희미해지는 손목

깁스를 한 채,

언제 일어나야 할까

 

창문에 닿는 겨울 음성들의 결빙

맑아지는 링거의 고요

혈액이 부족한 걸까

그렇게 화요일이 왔다

 

*

 

화요일을 이해한다는 건 뭐지

화요일은 무얼 할까

일주일이 세번 오고

화요일이 두번 오고

화요일에만 피어나는 장미와

화요일에만 죽는 장미의 눈빛

밤하늘에 뿌려놓을까

가시에 긁힌 잠 속으로

되돌아오는 화요일

이해해도 될까

 

*

 

시시해지는 화요일

화요일의 날개

화요일의 입술

화요일의 같은 숫자

화요일의 손목

회전목마처럼 화요일이 돌아와도

화요일인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

 

눈알을 씻는다

 

느린 얼굴로 떠오르는

 

화요일의 물속

 

너도 나처럼 죽은 거니……

 

- <무중력 화요일> 중에서

 

 


 

 

김재근 시인 / 아홉 나무를 위한 진혼곡

 

 

하늘을 오려 창을 내야겠군

 

별이 쏟아져 지구 한 귀퉁이가 부서지겠지만 말이야

 

그건, 오래전 붉은 눈의 기록

 

당신의 입술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겼군

나는 매일매일 물결처럼 걸어가 당신의 저녁을 지우고

눈꺼풀을 녹인다

 

무늬가 잠든 우주

알파와 오메가 바람이 실족한 벼랑

안테나가 된 나무 푸른 연기가 떠도는 저녁

[]속을 부유하는 마른 공기를 위해

 

불을 피워 제사를 지내야겠군

흔들리는 물의 이마 위에 양들을 올려놓고

검은 풍향계가 멈춘 곳. 입술의 수위를 채우는 비명들을 위해,

 

열기구를 타고 둥 둥 우주를 떠돈다.

영원히 발이 닿지 않는 세계, 내 영혼도 이렇게 태양 주위를 헤매다

식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

 

밤이 되자, 우주로 이주한 새의 깃털은 별을 물고

물속으로 날아갔다 비행선을 기다리는 나의 정거장, 다락방에 붙여 놓은

야광별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귓속에서 삐걱대는 파도소리,

누군가 보트를 타고 표류중인 것이다

내 영혼의 뜨거운 절벽에 누가 닻을 내리려는지,

밤마다 침대는 출렁이며 우주로

 


 

김재근 시인

1966년생 부산에서 출생. 부경대학교 토목과 졸업. 2007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2010년 제 10창비신인시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무중력 화요일(창비, 2015)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