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숙 시인 / 버려지는 수요일들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것들에게는 회상할 추억이 없다 자판기커피를 마시고 빈 종이컵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그냥 버리기엔 좀 우묵해서 너는 느닷없이 손톱을 깎는다 그때 바람이 방향을 틀고 수요일의 머리칼이 헝클어진다 구름이 버린 구름과 나무가 버린 나무처럼 뜨겁거나 무겁지 않은 컵 밖으로 튄 생각들 손가락에 침을 묻힌 너는 흩어진 손톱을 종이컵에 담아 버린다 너에게 한없이 가까워서 버리지 못한 우리라든가 그래도 그러므로 같은, 입속말들이 득실대는 수요일의 네 책상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수요일은 모두 버려, 버리라고 귀를 쪼며 철 늦은 매미가 운다 자판기 커피맛 같은 한 움큼의 수요일들이 네 손에 우그러져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쓰이기 전부터 우리는 호흡이 빠듯해진다 『문예바다』(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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