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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남철 시인 / 어제 누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3.

박남철 시인 / 어제 누가

 

 

아침부터 술에 취해서,

시외 전화까지 걸어와서,

자꾸 '죽음'이란 말을 입에 올려서-그는 지금 오랜동안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리라! - 나는 제법 차분하게 "죽음이란 없다!"고 단언해주었다.

 

죽음이란 없다.

 

그대가 그대의 태어난 순간을 모르듯이,

그대는 그대가 죽는 순간도 모르리라.

 

다만 있는 것은 생물학적인 공포와 개체 보존 본능만이 있으리라.

 

니체가 '영겁 회귀'같은 것을 얘기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잇는 셈이지만(*), '영겁 회귀 같은 것도 없으리라

 

다만 있는 것은 ''뿐일 것이다.

다만 있는 것은 '삶의 과정'일 뿐일 것이다.

 

그러니 친구여, 너는 너답게 살아라.

다만 공포와 본능을 뛰어넘을 약간의 '용기'는 필요할 것이지만,

그러니 더욱, 친구여, 너는 너답게 살아라!

 

 


 

 

박남철 시인 / 벤자민나무 그늘 아래서

 

 

벤자민나무 그늘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안개에 아련히 젖은

황금의 햇빛이 그 사이로 내리쪼이는

춘천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녹음은 무성하고 캠프 페이지는 고요하다.

벤자민나무는 푸른 분 속에 서서

벌거벗은 채로 카페트 위에 깐 얇은 요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를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다.

오늘은 67--- 시간 강사의 일도 작파해버렸다.

다만 이렇게 고요히 앉아 춘천 시가지 사이의

캠프 페이지 사이의 녹음을

멀리 동양화로 젖어 있는 산줄기들을

바라다 볼 뿐이다. 벤자민나무 그늘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낮게 깔린 시가지를

내려다 볼 뿐이다. 시간도 인환도 없이

6층 아래 내 배경에서는 7층 석탑이 서 있으리라.

 

- 문학정신> 19948월호

 

 


 

박남철(朴南喆) 시인

1953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9문학과 지성겨울호에 시 연날리기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지상의 인간반시대적 고찰, 러시아집 패설자본에 살어리랏다』 『바다 속의 흰머리뫼』 『1과 시선집 생명의 노래와 박덕규와의 공동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와 박남철 비평시집용의 모습으로(청하, 1990)가 있음. 2014.12.06 별세(향년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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