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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현주 시인 / 고양이 눈썹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9.

박현주 시인 / 고양이 눈썹

 

 

어떻게 해야 고양이 눈이 밝아지나요

 

속눈썹을 만져 주세요

수염을 살짝 당겨주세요

 

어떻게 하면 고양이의 표정이 예뻐지나요

 

왼손의 약지를 이빨 사이로 밀어 넣어주세요

잘근잘근 씹을 수 있는 가는 팔목의 근육을 내밀어주세요

 

가끔 고무공의 탄력 대신 통통 튀는 나의 혈관을 물려 주고 싶은데

등 뒤로 자꾸 다가와 할퀴는 고양이의 손톱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으면 도망가는 그 아이를 그래도 안아줘야 하나요

 

할퀸 자국에 물을 주고

그 아이의 눈썹을 뽑아 화분에 심어보세요

얼룩점박이 꽃들이 깜빡깜빡 속눈썹처럼 피었다 질 거예요

생쥐들이 발가락을 간질이면 파르르 떠는 수염도 볼 거고요

 

봄 햇살을 조심하세요

어느새 당신도 고양이 등처럼 휘어질 지도 모르죠

눈동자가 깨진 거울처럼 맑아진 날에는

 

 


 

 

박현주 시인 / 식물 채집하는 여자

 

 

불씨를 들고 빙하를 건너는 사람의 이야기 들려주었지

 

납작 눌린 가슴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어

잎맥만 도드라진 풀의 목소리

부딪히면 잠자리 마른 날개 소리를 내며

등과 배가 붙은 몸을 일으켜 세웠어

 

당신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목마름의 길고 짧은 궤적이 귀를 막았어

 

물 한 모금 넘기지 않던 목울대

목마름의 한 쪽을 떼어낸

양 볼이 부은 입 속

눈을 깜빡거리고 귀를 움찔거려

 

얼음이 박힌 그녀의 발바닥

불씨는 제 발등 위를 계속 걷다 빙하 위에 떨어지고

내게 지독한 은유를 남겼어

마스크를 쓴 채 웃는 웃음소리만큼 절묘했지

 

앨바트 복숭아의 즙을 받을 때만 잠깐 발그레해지던 입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무언가를 꽉 문 검은 입이었지만

결국 복숭아 색깔이었어

그녀가 남긴 녹빛 채집록을 펼치자

유리나방이 날개를 찢었어

 

빙하를 건너고 있어

손가락 불꽃이 타오르고

순록의 털이 긴 발굽은 앞으로 걸어가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 거기

미기록종으로 만나길

 

그땐 턱뼈가 좀 더 단단한 얼굴로 만나

허벅지가 굵은 영혼이면 좋겠어

 

 


 

박현주 시인

경북 상주에서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0년 《시평》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