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시인 / 고양이 눈썹
어떻게 해야 고양이 눈이 밝아지나요
속눈썹을 만져 주세요 수염을 살짝 당겨주세요
어떻게 하면 고양이의 표정이 예뻐지나요
왼손의 약지를 이빨 사이로 밀어 넣어주세요 잘근잘근 씹을 수 있는 가는 팔목의 근육을 내밀어주세요
가끔 고무공의 탄력 대신 통통 튀는 나의 혈관을 물려 주고 싶은데 등 뒤로 자꾸 다가와 할퀴는 고양이의 손톱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으면 도망가는 그 아이를 그래도 안아줘야 하나요
할퀸 자국에 물을 주고 그 아이의 눈썹을 뽑아 화분에 심어보세요 얼룩점박이 꽃들이 깜빡깜빡 속눈썹처럼 피었다 질 거예요 생쥐들이 발가락을 간질이면 파르르 떠는 수염도 볼 거고요
봄 햇살을 조심하세요 어느새 당신도 고양이 등처럼 휘어질 지도 모르죠 눈동자가 깨진 거울처럼 맑아진 날에는
박현주 시인 / 식물 채집하는 여자
불씨를 들고 빙하를 건너는 사람의 이야기 들려주었지
납작 눌린 가슴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어 잎맥만 도드라진 풀의 목소리 부딪히면 잠자리 마른 날개 소리를 내며 등과 배가 붙은 몸을 일으켜 세웠어
당신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목마름의 길고 짧은 궤적이 귀를 막았어
물 한 모금 넘기지 않던 목울대 목마름의 한 쪽을 떼어낸 양 볼이 부은 입 속 눈을 깜빡거리고 귀를 움찔거려
얼음이 박힌 그녀의 발바닥 불씨는 제 발등 위를 계속 걷다 빙하 위에 떨어지고 내게 지독한 은유를 남겼어 마스크를 쓴 채 웃는 웃음소리만큼 절묘했지
앨바트 복숭아의 즙을 받을 때만 잠깐 발그레해지던 입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무언가를 꽉 문 검은 입이었지만 결국 복숭아 색깔이었어 그녀가 남긴 녹빛 채집록을 펼치자 유리나방이 날개를 찢었어
빙하를 건너고 있어 손가락 불꽃이 타오르고 순록의 털이 긴 발굽은 앞으로 걸어가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 거기 미기록종으로 만나길
그땐 턱뼈가 좀 더 단단한 얼굴로 만나 허벅지가 굵은 영혼이면 좋겠어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초혜 시인 / 사랑굿 10 외 2편 (0) | 2022.11.29 |
---|---|
김옥성 시인 / 그의 공방에서 외 1편 (0) | 2022.11.29 |
박은정 시인 / 불황의 춤 외 1편 (0) | 2022.11.29 |
김명은 시인 / 사이프러스의 긴 팔 외 1편 (0) | 2022.11.29 |
박소영 시인 / 달의 산책 외 1편 (0) | 2022.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