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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춘희 시인 / 즐거운 산책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7.

최춘희 시인 / 즐거운 산책자

 

 

맨발로 숲을 걸었지

뽀송뽀송한 흙 아래

땅강아지 발바닥 간질거렸어

나무들 큰 키 구부려 머리 위에

고운 나뭇잎 떨궈 주었어

작은 아기다람쥐 꼬리를 올려

반갑다는 시늉을 했어

이름 모를 보라색 꽃 발 딛는 곳마다

환한 등불 달아 주었지

무거운 신발은 잊기로 했어

물소리 바람소리 죄다 따라와

귀 씻어주는 숲길

여기서는 누구나

즐거운 산책자라네

 

- 시집 <늑대의 발톱> 현대시

 

 


 

 

최춘희 시인 / 코끼리새를 알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지구 밖으로 외출 하였다

 

딱딱한 퇴적층을 뚫고

우주 저 멀리 날아갔다

 

수술대 위에 누워 전신마취 당한

한 여자를 알고 있다

그 여자는 고도비만이다

 

마다가스카르 섬에 살았다는

날개가 있어도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한

거대한 새의 유전인자가

그녀의 몸에 바코드로 찍혀있다

 

300만 년 전에 멸종된 알리바이를 찾아

오늘밤도 부재 중 이다

 

어둠의 신화가 입 벌린 그곳에

블랙홀이 자라고 있다

 

 


 

최춘희 시인

경남 마산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졸업. 1990년 《현대시》 신인상에 고등어 외 5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세상 어디선가 다이얼은 돌아가고』 『종이꽃』 『소리 깊은 집』 『늑대의 발톱』 『시간 여행자』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