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 시인 / 꽃씀바귀 사랑
나이 들수록 회사일에 가사(家事)에 힘이 부친다는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자주 했더니 훈장처럼 매달고 사는 주부습진, 어쩔거나 사랑도 오래 닳으면 보풀이 일어나는 걸까 손바닥껍질이 벗겨져 보푸라기 무성하다
저기 저, 길가에 해바라기하며 늘어서 있는 꽃송이들, 지구와 태양의 오랜 사랑이 닳아서, 지구촌 어느 손바닥에 습진 생겨 껍질 벗겨진 보풀인 걸까
한때 입맛 돋우는 별미로 인기 좋던 봄나물이었으나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잡초 취급이나 받는 풀, 쓴맛 제쳐두고 단 것만 찾는 밉상들, 당뇨 합병증으로 입안 헐은 꼴이 바로 저 모양이니, 한낱 구강습진의 보푸라기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렇다 해도 우리에겐 언제나 눈길 닿는 곳에 있는, 실밥 터진 잡초가 아니라 꽃,
아무리 오래도록 부비고 비벼도 여전히 우리 사랑 닳지 않아 활활 불꽃 일어나는 비타민, 나물로 김치로 장아찌로 때로는 효소로 날마다 밥상 위에서 칼칼하게 꽃심지 돋우는데, 혹시라도 습진 생길까 보풀 일어날까 오늘도 사랑을 설거지할 때마다 꼼꼼하게 핸드크림을 바른다
-『시와표현』 2019 7·8월호,
김승기 시인 / 해바라기
그녀가 바라보는 하늘은 창문만큼이다 새가 날아가는 것도, 저녁 어스름도 창문만큼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도,아련한 키스의 추억도 가늘고 길 내일도 모래도 창문만큼이다 바람이 그녀를 흔든다 창문만큼이다 흔들리는 가슴을 안아보려 하지만 창문만큼이다 날이 흐려도 창문만큼, 비가와도 창문만큼 문득 그녀의 등 뒤에 넓은 창窓 하나 더 달아주고 싶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선미 시인 / 천남성을 만나다 외 2편 (0) | 2022.12.08 |
---|---|
안차애 시인 / 반성적 당근 외 2편 (0) | 2022.12.08 |
김민소 시인 /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 1편 (0) | 2022.12.08 |
조영심 시인 / 꽃그늘 외 2편 (0) | 2022.12.08 |
황정숙 시인 / 내 안의 우물 외 1편 (0)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