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숙 시인 / 내 안의 우물
발끝을 적시고 심장을 품은 물속에 가만히 두레박줄을 내린다
어떻게 닻줄처럼 팽팽한 길이 저 깊은 우물 속으로 이어져 있었을까 한 두레박 퍼올릴 때마다 푸르게 지나간 것들이 뒤뚱거리며 출렁거린다
퍼낼수록 더 맑아지는 샘, 깊은 허공을 만들며 드러난 길 물길이 머물던 돌 틈에 뿌리내린 이끼가 어듬을 빨아들이고 있다
낚싯대를 끌어올릴 때 물비늘 떨어지듯 박힌 돌들을 별로 품은 하늘에 동심원이 퍼진다 두레박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실로폰 소리를 낸다
화음에 맞춰 수면에 퍼져가던 물그림자 그 시간으로 이어진 긴 두레박줄을 흔든다
멱까지 차오른 내 안의 우물물, 날 여기까지 끌어올렸을 어둑살무늬 지도 퉁퉁 불어터진 눈으로 만져본다 찰랑 허공으로 떨어질 두레박줄 팽팽하다
황정숙 시인 / 엄마들이 쑥쑥 자라난다
하늘이 시간을 움직였는지 해가 풍선처럼 떴다 짧은 팔로는 속수무책이다 가벼음이 놓쳐버린 부력을 바람으로 묶어놓은 곳
해와 달이 지나간 허공마다 낮과 밤이 들어 있다 제왕절개를 한 산모처럼 위태위태 걸어나오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림자를 따돌리기 위해 줄행랑친 걸음
엄마가 시간을 움직였는지 아이들이 질그릇처럼 구워진다 속수무책 애물단지들이다
흙이 빚어놓고 간 단지마다 아이가 들어있다 너 같은 것 둘만 낳아 봐! 여기저기서 이를 바드득 가는 엄마들이 쑥쑥 자라난다
아이가 밤낮의 길이만큼 제 몸에 엄마의 본을 떴다
밤낮이 아이의 키만큼 달그락거리다 늙어간다
애물단지도 엄마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유리컵 즉 차가운 우유처럼 양수마다 아이들이 출렁거린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차애 시인 / 반성적 당근 외 2편 (0) | 2022.12.08 |
---|---|
김승기 시인 / 꽃씀바귀 사랑 외 1편 (0) | 2022.12.08 |
김민소 시인 /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 1편 (0) | 2022.12.08 |
조영심 시인 / 꽃그늘 외 2편 (0) | 2022.12.08 |
최춘희 시인 / 즐거운 산책자 외 1편 (0) | 2022.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