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순례 시인 / 저녁강
살이 그리워
네 말을 들은 듯 살구가 떨어졌다 살구나무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툭 떨어지는 향기
살고 싶어 싸웠는데 죽지 못해 갈라섰는데 문득 그런 때가 있다고 전화기 너머 가라앉는 목소리가 강물을 적신다 너의 강가에 앉은 나도 억새 물결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당신이 뚜벅뚜벅 눈부시게 되살아오는 것 사랑과 증오를 넘어선 몸이 몸을 부르는 적막이
시큼했다 저녁 강물에 살내가 흘러다녔다
함순례 시인 / 강력반 형사에게 시집을 주다
형사는 도둑놈보다 항상 느려유 근데 워떠케 잡냐! 놈이 넘어질 때가 있슈 그런때가 꼭 와유 그 찰나를 낚아채는 거쥬 아, 나도 매일 창작해유 도독놈들의 사연이 좀 구구하고 절절해야 말이쥬 괴발개발 성성하기 짝이 없슈 육하원칙 들이밀고 모나고 찌그러진 것들 어르고 달래고 아주 골치 아파유 조서 쓰다 진이 다 빠지구 머린 허옇게 세쥬 즐거운 고통이라구유? 헛참 어찌 이리 똑같을까 그놈들이 날 먹여 살리니 나도 즐거워유 잡아도 잡아도 도독놈들이 자꾸 생겨나서 일 없어 짤릴 염려도 없지유 어라 형사의 품위가 점점 요상해지네유 시인 말발에 걸려 옴팡 넘어질 뻔했슈 헌데 말이유 그렇게 마주앉아 힘을 쓰다보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놈들 뒤통수를 탁 치고 싶을 때가 부지기수지만 몇 놈은 참 애잔혀유 발 한번 삐끗하면 주저 앉는게 사람인디 손 잡아줄 만한 내력들이 어찌나 허름한지 눈물이 핑 돌 때도 있슈 나라도 잡아줘야 하나 나도 몰래 손가락이 꼼지락 꼼지락 헌다니께유 이건 참말이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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