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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성규 시인 / 생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6.

김성규 시인 / 생일

 

 

 거대한 물고기 한마리가 방 안을 헤엄치고 있다

 

 아이를 등에 태우고

 잠 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물고기

 방바닥에 널려 있는 책과 빈 그릇 사이

 몸을 흐느적이는 미역 줄기들

 

 창틀에 앉은 사내가 쓰윽……

 낚싯대를 드리울 때

 

 일렁이는 먹이를 바라보며

 눈동자가 흔들리는 물고기

 숨을 참지 못한 아이가

 공기방울을 한개 두개 뱉어낸다

 

 지느러미가 벽에 긁히고

 책이 떨어지고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헤엄치며

 유리창을 들이받는 물고기

 

 눈동자가 흔들리는 물고기

 숨을 참지 못한 아이가

 공기방울을 한개 두개 밸어낸다

 

 지느러미가 벽에 굵히고

 책이 떨어지고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헤엄치며

 유리창을 들이받는 물고기

 

 상처를 벌리듯 눈꺼풀을 들어올려

 천장을 본다

 아가미에서 ​

 어둠 속에서

 미역 줄기 같은 이불을 몸에 감고 운다

 

-시집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중에서

 

 


 

 

김성규 시인 / 의료보험카드

 내 몸엔 병균이 있어요 그것은 떠놀아다니던 것들을 집어삼키고 몸에 가두었기 때문이죠 읍내로 나가면 공장이 있어요 그 공장에서 사람들은 줄지어 일했죠 김치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로 배추들이 올려지고 소금물에 절은 배추를 씻어내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어요

 전염병이 퍼지고 작년 여름에 공장은 문을 닫았어요 전날까지 아무도 우리에게 얘기해 주지 않았어요 공장 앞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집까지 걸어왔어요 방역차들은 밤낮으로 사이렌을 올리며 달려가요

 옆집에서 또 한 사람이 실려 갔어요 단지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죠 사실은 우리가 더 운이 나쁜지도 몰라요 살아서 죽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니까요 때론 그 사람이 자기 자식일 수도 있어요

 하얀 배추를 상자에 담을 때 가끔 그것이 우리 몸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죽은 몸이 저기 배추 포기처럼 담기겠구나 죽은 사람들 떠나보낼 때 우린 울 수가 없어요 이웃집 사람들이 알면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죠

 우편함에 건강보험이나 진료를 받으라는 우편물이 가

끔 와요 뜯어 보기도 하지만 그냥 버릴 때가 많아요 사실 열어 보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 마음을 열어 보는 것 같아 보고 나서도 마음이 찜찜해요

 집에 있던 개가 집을 나가 동상에 걸려 돌아온 적이 있어요 그렇게 겨울 동안 배추를 씻으며 동상에 걸린 여자들은 집에 가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아요 아픈 것은 창피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병과 남은 근심들 뿐이에요 그것들 때문에 그나마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다고 믿어요

-동인지 『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중에서

 

 


 

김성규 시인

1977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했고 2003년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 가나』가 있다. 2014. 제32회 신동엽문학상. 제4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시힘> 동인.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