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자 시인 / 조율
거미줄 치며 천장을 옮겨 다니는 다리 여덟 달린 생각 현을 위한 아다지오 스트링 op. 18-2 빠르게 연주해야하는 고음의 4악장 레가토, 피치카토로 손끝에 핏물 맺힐 때까지 뜯어내도 무기력에 빠진 현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다 일곱 시 여덟 시 아홉 시로 건너갈수록 빨라지는 속도를 귀로만 좇는다 속도의 귀퉁이를 집거미 한 마리 지나간다 망설이는 줄이 흐느적 조율을 해야 하는데, 하는데 어디로 오는 길도 향하는 길도 없는 해태(懈怠)의 시간 게으름을 조율한다
정운자 시인 / 기마여인상
당삼채로 붉은 치마를 해 입고 국철을 타고 두 시간 남짓 흔들리는 내가 있어 중간 어디 이백이 달빛에 취해 비틀거리던 시절 단호한 팔뚝에 말아진 채찍 동글동글한 얇은 턱 호통을 머금고 있는 가는 눈썹 테라코타
나에게 가는 두 시간 그녀가 달려오느라 걸린 이천 몇 백 년
웃음은 붉어 못 본 척
밋밋한 가슴을 곧게 세우고 두 시간 남짓 흔들리면서 나는 말을 타네 덜컹거릴 때마다 종아리는 무겁고 어깨는 내려앉네
나는 투르판 아스티나에서 왔다는 자주 저고리에 흘러내린 당상채 빛 시간의 부장품에서 꺼내진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옷섶에 손을 넣으면 설레는 빛바랜 연서가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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