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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운자 시인 / 조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8.

정운자 시인 / 조율

 

 

거미줄 치며 천장을 옮겨 다니는

다리 여덟 달린 생각

현을 위한 아다지오 스트링 op. 18-2

빠르게 연주해야하는 고음의 4악장

레가토, 피치카토로 손끝에 핏물 맺힐 때까지

뜯어내도 무기력에 빠진 현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다

일곱 시 여덟 시 아홉 시로 건너갈수록

빨라지는 속도를 귀로만 좇는다

속도의 귀퉁이를 집거미 한 마리 지나간다

망설이는 줄이 흐느적

조율을 해야 하는데, 하는데

어디로 오는 길도 향하는 길도 없는

해태(懈怠)의 시간

게으름을 조율한다

 

 


 

 

정운자 시인 / 기마여인상

 

 

당삼채로 붉은 치마를 해 입고

국철을 타고 두 시간 남짓 흔들리는 내가 있어

중간 어디 이백이 달빛에 취해 비틀거리던 시절

단호한 팔뚝에 말아진 채찍

동글동글한 얇은 턱 호통을 머금고 있는 가는 눈썹

테라코타

 

나에게 가는 두 시간

그녀가 달려오느라 걸린 이천 몇 백 년

 

웃음은 붉어 못 본 척

 

밋밋한 가슴을 곧게 세우고

두 시간 남짓 흔들리면서 나는 말을 타네

덜컹거릴 때마다 종아리는 무겁고

어깨는 내려앉네

 

나는 투르판 아스티나에서 왔다는

자주 저고리에 흘러내린 당상채 빛

시간의 부장품에서 꺼내진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옷섶에 손을 넣으면 설레는 빛바랜 연서가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지

 

 


 

정운자(鄭雲慈) 시인

1967년 강원도 태백 출생. 강릉대학 미술학과 졸업. 2013년  계간 <다층> 봄호 2회 추천 완료. 현재 다층, 다층문학회 동인, 양주작가회의 회원, 한국작가회의 양주지부 회원. 수채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