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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시경 시인 / 아이 캠퍼스의 봄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9.

이시경 시인 / 아이 캠퍼스의 봄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인가 포탄 소리인가 매듭은 풀리다가 꼬이고 포연 속에서 허기진 뱀은 똬리를 틀고 꼬리를 삼키려는지 쇳소리가 커지다가 잦아들고 깨알 같은 것들이 머리 없이 꼬리를 흔들다 꼬리가 머리가 되고 거머리들의 탐욕은 브레이크 없이 거대해지고 회오리 속의 천사들이 헤쳐 모이고 고물고물 숱한 아이들의 초조가 소나기처럼 내리고 여기저기 숫자들은 바람 앞의 꽃잎처럼 줄 서서 갈증도 잊고 비틀거리고 사자들은 먹고 먹히고 별별 새끼들이 커졌다 작아졌다 이리 뭉치고 저리 뭉치고 눈들은 빨갛게 이글거리고 태양 속 불나비들의 날개 부딪는 소리는 르장드르 파동 함수처럼 사방으로 구불구불 퍼져 나가고 벌들의 근심은 나선형 춤을 추며 코일처럼 줄었다 늘어났다 앵앵거리고 수개미가 일개미보다 바쁘고 도서관 앞 벚꽃은 입을 다물 줄 모르는데 윙윙거리는 컴퓨터,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는 벌레들,계산,계산,계산, 이리 틀고 저리 비틀고 주변 경계 영역에 허리끈을 조이고 희거나 검은 알갱이들 자판기 속에서 튀어나오고 초당 수조 번씩 머리 굴리고 여럿이 모여서 입과 뇌가 되고 천사들의 합창에도 슬픔 덩어리들이 파도를 치고 새벽을 가로지르는 새 떼, 창공을 가르고 흩어져 결국 각자의 둥지로 수렴하는데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저녁이라 하고 부둣가로 모여드는 갈매기를 아침이라 하면 지금은 어디에 사는 날짐승인가, 그들이 숱하게 찾아와 학습시키는가, 너는 그들의 노예, 너는 올빼미, 너는 흰 나무숲에 기거하나 너의 꿈은 은하에 이르고, 너는 쉴 새 없이 새끼를 쳐서 우주는 너의 새끼로 가득하고 이슬방울 속 톱니가 돌기 시작하면 비상하는 아이들, 제로에서 무한대까지 무수히 많은 심장이 뛰고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이시경 시인

본명 이경식. 2011년 《애지》로 등단. 시집으로 『쥐라기 평원으로 날아가기』 『아담의 시간여행』이 있고,  교양과학/과학에세이 『과학을 시로 말하다』가 있음.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