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랑 시인 / 와송
바위 위에서 소나무처럼 자란다고 당신을 바위솔이라고도 부르더군요
항암작용에 좋다는 와송, 갑상선암으로 주름살만 늘어난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어 망설임 없이 뿌리채 뽑았지요
무엇이든 몸 속의 것이라면 다 꺼내어주고 싶은데 당신만한 효능이 저에게는 없더군요
병상에서 링거 맞고 있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요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눈물이 흐릅니다
세 살이 되던 겨울밤이었을 겁니다 경끼한 나를, 어머니는 버선발로 업고 이웃마을 칠성할멈에게 갔었지요
그래요, 어머니에게 오늘만큼은 와송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정이랑 시인 / 겨울 은해사
육신이 머물렀던 마을에서 영혼의 터를 찾아 당도한 겨울 산사 사람 그림자라곤 볼 수 없는,낙엽만이 목탁소리에 끌려 바람에 쓸리고 있을 뿐 오래 비워둔 외길은 처진 발목을 잡아당겼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가지마다 미끄러지는 이름 모를 산새의 잿빛 울음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 한 줌 따스한 흙으로 뒤덮여 뼈마저 삭아지면 강물처럼 출렁이는 푸른 목소리로 살아나 말라버린 행인의 빈 가슴에 젖어들까 보다 발목이 시렵다 불빛 하나 없는 고요 속에 홀로 장작을 나르는 동승의 얼굴 가득 피어나는 미소 막 어둠 속을 뛰쳐나온 별빛 같았다 아궁이에 활활 타는 불속 저녁이 익고 낯설음이 타버리고 부끄럽게 살아온 날들이 화끈거렸다 얼어붙은 흉장까지 녹아내려 돌아설 때 동승은 인사대신 염주를 손목에 끼워 주었고 맺힌 눈물이 풀리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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