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웅 시인 /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 있다
한 사내가 지하철 역에 박제품으로 걸려 있다 낡고 긴 외투로 감싸고 고개 늘어뜨린 채 매표대 옆 한쪽 모서리 허공으로 걸려 있다 퇴근길 전동차에 매달려 내려다보면 모두 죄인들처럼 고개 숙인 채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다 아무도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지만 전동처럼 광고판 한 귀퉁이에 꽂혀 있는 자동차 시내 주행 안내 명함으로 모든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 있다 아니 매달려 있다 누군가에 의지해 기댄 채 선 채로 그러나 정지해 있으면서 어딘가에 걸려 이동하고 있다
지금 나도 정지한 채 어딘가에 걸려 끝없이 이동중이다
금기웅 시인 / 낙엽들은 떨어지는 방식이 있다
누우런 잎새들은 천천히 흘러내린다 누군가 제 둥지를 떠난 그들을 느린 속도로 위로 밀어올렸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아래쪽으로 끌어내리고 있는지 햇볕은 지상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아직 초록빛 남아 있는 놈들만 골라 몇 번 마음을 내주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남겨둔 마지막 색깔들을 덧칠해준다 바람도 어디에서든지 그들을 간섭하면서 끝내는 사상자처럼 조각 내어 경사진 쪽으로 내던진다 저 떡갈나무 가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시간들은 둥글고 마른 상수리들을 골라 물고 조용히 떠나간다 아무리 작은 잎새들도 붉은 물감 가득 풀어놓은 저녁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우우 쏟아진다는 것을 아침이 되면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잎새 큰 낙엽들은 어느 한쪽으로만 깊게 쌓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아마 속 깊은 세월의 집터를 다지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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