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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금기웅 시인 /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 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9.

금기웅 시인 /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 있다

 

 

한 사내가 지하철 역에 박제품으로 걸려 있다

낡고 긴 외투로 감싸고 고개 늘어뜨린 채

매표대 옆 한쪽 모서리

허공으로 걸려 있다

퇴근길 전동차에 매달려 내려다보면

모두 죄인들처럼 고개 숙인 채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다

아무도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지만

전동처럼 광고판 한 귀퉁이에 꽂혀 있는

자동차 시내 주행 안내 명함으로

모든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 있다

아니 매달려 있다

누군가에 의지해 기댄 채

선 채로 그러나 정지해 있으면서

어딘가에 걸려 이동하고 있다

 

지금 나도 정지한 채

어딘가에 걸려 끝없이 이동중이다

 

 


 

 

금기웅 시인 / 낙엽들은 떨어지는 방식이 있다

 

 

누우런 잎새들은 천천히 흘러내린다

누군가 제 둥지를 떠난 그들을

느린 속도로 위로 밀어올렸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아래쪽으로 끌어내리고 있는지

햇볕은 지상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아직 초록빛 남아 있는 놈들만 골라 몇 번 마음을 내주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남겨둔 마지막 색깔들을 덧칠해준다

바람도 어디에서든지 그들을 간섭하면서

끝내는 사상자처럼 조각 내어 경사진 쪽으로 내던진다

저 떡갈나무 가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시간들은

둥글고 마른 상수리들을 골라 물고 조용히 떠나간다

아무리 작은 잎새들도

붉은 물감 가득 풀어놓은 저녁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우우 쏟아진다는 것을 아침이 되면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잎새 큰 낙엽들은

어느 한쪽으로만 깊게 쌓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아마 속 깊은 세월의 집터를 다지고 있는 것이리라

 

 


 

금기웅 시인

충북 옥천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자신없는 것들은 걸려 있다> <끝없는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