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상조 시인 / 응, 나야 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2.

김상조 시인 / 응, 나야 나!

 

 

젖빛 안개 속에 소리가 들렸다.

두리번거리다 눈을 떴는데

 

어젯밤 재생해놓은 음악이 계속 틀어져 있었다.

 

문틈으로 출구가 보여

맨발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찬 공기가 내 볼에 달라붙었다.

정신이 한 번 더 깨어났고 귀가 열렸다.

 

‘산뜻하다.’ 감각에서 소리가 났다.

 

노란 햇빛 속에서 먼지가 희끗희끗 부유한다.

빈 가지마다 당도가 차오른다.

 

통째의 모음들이 내게 기웃거리며

헷갈려 한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말할 수 있다.

 

 


 

 

김상조 시인 / 서로라는 이름의 색감

 

 

음악과 함께

도서관 이용 종료 방송이 나왔어

이제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내가 틈틈이 창을 보며

물들여 갔던 그 고운 색감의

온도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김상조 시인 / 서로라는 이름의

 

 

내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듯이

내가 비 갠 하늘을 잠시 쳐다보다

분무기를 들고 화분에 물을 뿌려줬을 때

드러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듯이

내가 노을을 바라보다

서서히 번져오는 붉은 빛에

가만히 눈물 맺혔던 것처럼

내가 밤하늘의

은하수 소리를 듣다 문득

귀가 먹먹해졌던 것처럼

그래 내가, 내가

서로를 바라보듯이

서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그 모든 사람의 이름을,

 

-시집 '서로라는 이름은' 중에서

 

 


 

김상조 시인

1993년 해남에서 출생. 2019년 <<포엠포엠>>으로 등단. 시집 『시의 나라 시민』 『서로라는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