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 시인 / 한솥밥
기껏 싸준 도시락을 남편은 가끔씩 산에다 놓아준다 산새들이 와서 먹고 너구리가 와서 먹는다는 도시락
애써 싸준 것을 아깝게 왜 버리냐 핀잔을 주다가 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 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내가 몇 시간이고 불리고 익혀서 해준 밥이 날개 죽지 근육이 되고 새끼들 적실 너구리 젖이 된다는 생각이 밥물처럼 번지는 이 밤
은하수 물결이 잔잔히 고이는 어둠 아래 둥그런 등 맞대고 나누는 이 한솥밥이 다디달다
문성해 시인 / 급전
-죽은 시인을 문상하러 가는 길에 전당포를 만나다 그 앞에서 서성거렸을 가난한 시인의 저녁을 떠올리다
전당포를 보면 무언가 맡기고 싶어진다 금니 때운 것부터 지갑에 만년필까지 내 가진 것 다 맡겨놓고 야금야금 수혈 받듯 돈을 가져다 쓰고 싶다
그곳의 늙다리 주인은 내 가진 것 중 나도 모르는 보물을 찾아내어 급전을 해 줄 것만 같다
내 밟은 길 중 가장 닳고 닳은 길은 집에서 전당포 가는 길
어느 날 나는 그에게 헌신짝처럼 버려져도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이다음 생은 내 맡긴 것들을 하나 하나 찾아오는 일에 바쳐져도 좋을 것 같다
전당포를 보면 무언가를 찾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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