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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문경 시인 / 거리에 대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30.

조문경 시인 / 거리에 대해

 

 

아파트 화단을 지날 때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둘레둘레 살피던 남편이 화단 쪽 꽃을 보더니

다가가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너무 독하네

 

쪼그려 앉아 나를 보는

남편 어린아이 같다

그도 저만큼에서 향기로운가

 

-시집 <노란 장미를 임신하다>

 

 


 

 

조문경 시인 / 낮에 본 모든 것을 잊으시라

 

 

조그마한 섬

붉게 물들다가 순식간

 

어두워질 때

낮에 본 모든 것을 잊으시라

황홀하게 물든다는 것은

오늘에 눈멀어 내일로 가는

제의(祭儀) 같은 것

 

삶이 삶을 건너는 매듭

 

어둠에 덮여서도 거대한 짐승처럼 파도는 출렁이고

내일로 가고 있다

섬은

 

 


 

조문경 시인

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삶글]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항상 난 머뭇거렸다』 (2003). 『노란 장미를 임신하다』 (2008). 『엄마 생각』 (2013). 『모든 것에는 뒤통수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