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빈 시인 / 무풍지대
외할머니는 혼수품에서 선풍기를 뺐다. 딸 곁에 바람 한 점 불지 말라고 바람이라는 서늘한 목록을 지워버렸다.
오만가지 잡 바람에 집을 날리고 전답을 날리더니, 딸만은 바람맞는 일 없이 살아야 한다며 선풍기를 사러 나간 이모에게 바람을 맞혔다.
무풍지대로 시집을 간 이모는 바람은 없을 거라 굳게 믿었다. 분명 바람 한 점 가져가지 않았는데 웃음 뒤편에 검은 구름이 돋고 있었고 먹구름 묻은 돌풍에 우지끈 서까래와 대들보가 내려앉았다. 이바람, 저바람, 만지던 이모부 어느날 바람으로 사라졌다.
바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바람과 더불어 사는 것 그것을 알기까지 이모는 갖가지 된바람을 만나야했다.
딸이 일으킨 바람에 쓰러진 외할머니 대신 바람을 막느라 중풍을 맞았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무풍지대는 없었다.
이서빈 시인 / 2인분 고독
밤기차에 무작정 몸 싣고 달릴 때 달이 함께 동행했어 나뭇가지에 걸렸다 산 뒤로 숨었다 내 걱정 한 보따리 이고 나뭇가지 뒤로 산 뒤로 숨고 숨으며 보살폈어 깜깜한 무덤속에 누워 있던 엄마 딸 안부 걱정스러워 달뒤에 숨어서 따라 다니고 있었지
글썽 글썽, 죽어서도 글썽이는 지독한 사랑
엄마 며느리 아내 파먹기만 하는 기생충 사이서 타인의 삶만 살았지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눈빛에 찔려 늘 타인의 삶을 살다 걱정이 팔자라 죽어서도 관뚜껑 열고 나와 근심을 따라 다녔지 먹구름 눈 비 바람 그림자로 따라다니며 뼛속까지 걱정으로 뭉친 기차 기적소리 멈추자 관뚜껑 닫는 소리 덜컥, 나더니 관뚜껑 빼꼼 열고 오랫동안 근심을 흔들고 서있는
죽은 날짜 허공에 던지면 구름이 되고 산 시간 허공에 던지면 읽다만 문장 된다는데 그 세상도 이 세상도 아닌 중간 쯤 그 어디서 수천만 년을 미완성으로 기다릴지 귀열고도 울음소리 듣지 못해 자꾸만 뒤 돌아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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