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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성미정 시인 / 고통어 자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31.

성미정 시인 / 고통어 자반

 

 

사바세계의 사람들은 고통어 자반을 즐긴다

 

왕소금을 잔뜩 뿌린 고통어

숨이 죽을 대로 죽은 고통어는

고춧가루 신김치 마늘 형형색색의 고통을

듬뿍 첨가해도 쓰라려하지 않는다

그래야 더욱 맛이 좋아진다나

 

어린 고통어는 너무 짜다

너무 비리다 코를 감싸 쥐고

고통어 자반을 외면한다

고통어 자반에는 지독하게 푸르던 시절의

비린내가 여전히 펄떡거린다고 믿고있는

 

어떤 고통어는 모두들 고통어 자반이 되어

고통으로만 고통하는 고등한 사바세계에

아직도 덜 절여진

 

어떤 고통어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를 회유하며 비린내 같은

시 몇 편을 지져낼 뿐

 

* 사바 - 일본어로 고등어를 뜻하기도 한다

 

시집 <상상한 상자> 2006년 랜덤하우스

 

 


 

 

성미정 시인 /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유일한 재미라야 가끔 맥주를 마시는 것과

재미라곤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남편을

골려주는 재미로 사는 35살의 가정주부 성모 씨가

어느날 띠포리라는 멸치 비슷한 말린 생선을

만난 후 다양한 재미에 빠져드는데

 

띠포리에서 깨끗한 국물을 뽑기 위해선

대가리와 내장을 발라내는 게 필수

그런데 이 띠포리란 놈은 멸치와 달리 납작하고

뼈가 센 것이 특징이라 잘 벗겨지지 않는

재미와 손가락을 찔리는 재미

게다가 금방 손질을 끝낼 수 없는 재미까지 있는데

 

35살의 주부 성모 씨는 띠포리를 손질하는 게 재미있을수록

띠포리가 줄어드는 만큼 불안 또한 커져가는데

급기야 띠포리를 다 손질하지 않고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아껴 손질할 생각까지 하게 되고

 

어느 적막한 밤 성모 씨가 남편에게 묻기를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남편 배모 씨는 너무나 비장한 아내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 혹시 띠포리가 떨어지면

아내가 자살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되길래

띠포리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서 채워놓으리라

성모 씨에게 다짐을 하고

 

그날 이후 35살의 주부 성모 씨의 인생엔

근심 걱정이 없다는데 세상이 아무리 지루해도

띠포리가 있고 띠포리를 사 주겠다는

남편이 있으니 더 이상의 행복은 욕심이라며

자신을 타일러가며 띠포리를 손질한다는데

 

 


 

성미정 시인

1967년 강원도 정선 출생, 강원대 사학과를 졸업.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한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