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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동균 시인 / 검은 빵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31.

전동균 시인 / 검은 빵

 

 

허리를 숙여

마당의 돌을 하나 주웠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들고 서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나를 때리며 위로하며 멀리 걸어왔지만

한 발짝도

내 가슴 밖으로 나가지 못했군요

 

녹음의 숲을 바라보니

한껏 사나워진 그늘 속으로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지고 열차가 달려가고

화물칸에서도 춤추며 노래하는 사람들

얼어붙은 땅바닥에 무릎 꿇고 입 맞추는 사람들

 

며칠 만의 햇볕이 하도 좋아

나도 모르게 그만

내가 한 덩이 빵으로 구워졌으면, 생각합니다

 

움막 속의 검은 빵

감춘 눈물의, 응답 없는 기도의,

그 기도가 구원인

바보들의 빵

 

 


 

 

전동균 시인 /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을 불러도 약속이 어긋나도

 

 

산밭에

살얼음이 와 반짝입니다

 

첫눈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고욤나무의 고욤들은 떨어지고

 

일을 끝낸 뒤

저마다의 겨울을 품고

흩어졌다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연기들

 

빈손이어서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왔고

저희는

저희 모습이 비치면 금이 가는 살얼음과도 같으니

 

이렇게 마른 입술로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전동균 시인

1962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산문집 『나뭇잎의 말』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