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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고니 시인 / 아주 오래된 자작나무 아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4.

김고니 시인 / 아주 오래된 자작나무 아래

 

 

불꽃 속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자작나무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숨겨두고 살았을까

새들도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데

나는 엄마를 부르며 운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엄마였구나

 

어릴 적엔 자작나무의 몸은

수피가 벗겨진 벌거숭이라고 생각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맨발로 서 있는 나무

불꽃 속에서 뜨거워진 몸으로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나무

울음 속에

아주 오래된 글자를 새겨놓고

벌거벗은,

 

엄마의 마지막 숨결이 타오를 때

자작나무야, 하고 불렀다

맨발로 서 있던 고단한 다리를 눕히고

불꽃 속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자작나무였다

 

계간 『스토리문한, 2018 가을 겨울호 』,《문학공원》에서

 

 


 

 

<동시>

김고니 시인 / 발자국

 

 

새가 지나간 발자국은

하늘이 되고

 

아기가 지나간 발자국은

아침이 되고

 

바람이 지나간 발자국은

햇살이 된다

 

발자국이 길을 만든다

 

돌아보면,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내 발자국은 무엇이 될까?

 

 


 

김고니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16년 월간 <see> 추천 시인상을 등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발자국』, 『냉장고를 먹는 기린』, 『팔랑』 『아무도 손대지 않은 아침을 너에게 줄게』와 공저 『첫눈 오는 날』. 동시집 <완이의 잠꼬대>. 2017년, 2019년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서울시인협회, 강원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