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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종철 시인 / 칫솔질을 하며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4.

김종철 시인 / 칫솔질을 하며

 

 

요즘은 이 닦는 법을 다시 배웁니다

하루에 세 번, 삼종기도처럼 닦습니다

아침에 하는 칫솔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온종일 해둘 말과 생각을 구석구석 닦습니다

 

점심때 하는 칫솔질은

생각 없이 불쑥 튀어나온 독설과

이빨 사이 낀 저주를 닦고 파냅니다

어쩌다 부러진 이쑤시개의 분노와 마주칠 때는

이내 거품을 물고 있는 후회로

양치질을 한 번 더 해둡니다

 

잠들 때 하는 칫솔질은

하루 종일 씹고 내뱉은 죽은 언어의

껍질을 헹구어 내고

생쥐같이 몰래 들락거렸던 당신의

목구멍에 경배 드리는 일입니다

하루의 재앙이 제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때늦은 반성문처럼 졸리운 칫솔로

꿈의 혓바닥까지 박박 긁어냅니다

 

 


 

 

김종철 시인 / 등신불

-등신불시편 1

 

 

등신불을 보았다.

살아서도 산 적 없고

죽어서도 죽은 적 없는 그를 만났다.

그가 없는 빈 몸에

오늘을 떠돌이가 들어와

평생을 살다간다.

 

 


 

 

김종철 시인 / 밑 빠진 독

-등신불 시편 6

 

 

작은 몸뚱이 하나

좋은 옷 좋은 음식 공양했더니

교만과 욕심만 커져

제 몸뚱이만 보물단지로 아끼고 아껴

큰 독 속에 들어간 마음 하나만

먼저 썩는다

 

-《등신불 시편》문학수첩.2001

 

 


 

김종철(金鍾鐵) 시인(1947~2014)

1947년 부산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서울의 유서遺書」「오이도烏耳島」「오늘이 그날이다」「못에 관한 명상」「등신불等身佛시편」「어머니, 우리 어머니(형제 시집)」 제13회 정지용문학상, 제3회 편운문학상, 제6회 윤동주문학상, 제4회 남명문학상 등을 수상함.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겸임 교수 역임. 현재 계간 『문학수첩』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시인협회 이사. 2014. 7. 5 지병으로 별세(향년 6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