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시인 / 칫솔질을 하며
요즘은 이 닦는 법을 다시 배웁니다 하루에 세 번, 삼종기도처럼 닦습니다 아침에 하는 칫솔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온종일 해둘 말과 생각을 구석구석 닦습니다
점심때 하는 칫솔질은 생각 없이 불쑥 튀어나온 독설과 이빨 사이 낀 저주를 닦고 파냅니다 어쩌다 부러진 이쑤시개의 분노와 마주칠 때는 이내 거품을 물고 있는 후회로 양치질을 한 번 더 해둡니다
잠들 때 하는 칫솔질은 하루 종일 씹고 내뱉은 죽은 언어의 껍질을 헹구어 내고 생쥐같이 몰래 들락거렸던 당신의 목구멍에 경배 드리는 일입니다 하루의 재앙이 제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때늦은 반성문처럼 졸리운 칫솔로 꿈의 혓바닥까지 박박 긁어냅니다
김종철 시인 / 등신불 -등신불시편 1
등신불을 보았다. 살아서도 산 적 없고 죽어서도 죽은 적 없는 그를 만났다. 그가 없는 빈 몸에 오늘을 떠돌이가 들어와 평생을 살다간다.
김종철 시인 / 밑 빠진 독 -등신불 시편 6
작은 몸뚱이 하나 좋은 옷 좋은 음식 공양했더니 교만과 욕심만 커져 제 몸뚱이만 보물단지로 아끼고 아껴 큰 독 속에 들어간 마음 하나만 먼저 썩는다
-《등신불 시편》문학수첩.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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