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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향기 시인 / 불이不二(non-duality)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5.

윤향기 시인 / 불이不二(non-duality)

 

 

갓 지은 따끈한 밥을 푸고

날김 몇 장과 조기 한 마리 들고

마당 탁자에 앉았다

 

햇살과 인사하느라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김은 바람에 업혀 날아가고

조기는 고양이가 낼름했다

 

그래

바람은 바람 역할에 충실했고

고양이는 조기 냄새 마다하면

진짜 고양이가 아니지

 

나는 간장에 밥 비벼 맛있게 먹었다

 

 


 

 

윤향기 시인 / 엄나무 명상법

 

 

가시나무 아래

참깨 알갱이같이 아주 조용하게 앉아봐

숨쉬기와 성격은 하나야

태양이 그 빛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절대 순수에 홀로 서 보고 싶다면

시인의 이름을 아침마다 반복해 부르는 거야

그 소리와 음절에 깃든 신성이

너의 마음을 지나가는 순간,

너는 시를 느끼고

너는 한 편의 시로 태어나

너를 비추면서 함께 세상을 비출 거야

깊은 들숨과 날숨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시신은 너의 이름을 반복하고

너는 참깨 알갱이 속에서 만난 우주와 나란히 앉아

그걸 듣는 거야.

 

 


 

윤향기(尹香基) 시인

1953년 충남 예산 출생. 경기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91년 《문학예술》로 등단. 경기대학교 한국동양어문학부 교수, 시인, 여행작가. 시집 『북극 여행자』 『피어라, 플라멩고!』 『흙, 바람을 채집하다』 『엄나무 명상법』 『굴참나무 숲과 딱따구리』 『내 영혼 속에 네가 지은 집』 『그리움을 끌고 가는 수레』와 수필집 『태도가 뮤지컬이 될 때』 『아모르파티』 『나는 타인이다』 등. 2006년 제4회 서정시학상 수상,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 『열린시학』 고문, 『문학에스프리』 편집인. 웹진 『시인광장』 객원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