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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유선 시인 / 가족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6.

김유선 시인 / 가족

 

 

싸우지 말아라

남편은 우리에게 타이러고 나가지만

나가서는 그는 싸우고 있다.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그가 현관문을 들어설 때

우리들은 안다.

그의 옷을 털면

열 두번더 더 넘어졌을 바람이

뚝 뚝 눈물처럼 떨어진다.

싸우지 말아라

아침이면 남편은 안스럽게

우리를 떠나지만

그는 모른다.

아이들의 가볍고 보드라운 입김이

따라가는것을

그가 싸울 때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떨고 있는 것을~

 

 


 

 

김유선 시인 / 유년의 모래밭

 

 

유년의 모래밭 위에

낯선 새 한 마리

문득 날아와

옛날처럼 꿈을 쪼아먹고 있다

 

그 깊이따라 빛깔 달라지는

추억 한 움큼씩 파내면

 

묻혀진 시간들

우 수 수 살아나와

살갗을 간지럽힌다

이제는 아픔조차 그리움이여

 

얼굴 붉히던 바람 찾아서

파고 또 파들어가면

어느 길목에선가 함초롬 들꽃자리

거기 아직껏 젖어있는 모래무덤

 

 


 

김유선 시인(1950년~2019년)

1950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198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놓친마음찾기』 『빈집』 『은유의 물』 『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 등과 그 밖의 저서로는 『춘원시 연구』, 『현대시 연구의 방법론적 실제』등이 있음. '천상병 시문학상' 수상. 현재 장안대학 디지털 문예창작과 교수. 2019년 5월 22일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