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배 시인 / 새벽길
누가 바람 속에 바람으로 불어와 순결한 풀빛이 되고 꽃 속에 꽃으로 다가와 투명한 향기가 되는지 눈뜨는 아침보다 먼저 깨어나 숲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어보면 안다.
누가 씨앗 속에 씨앗으로 떨어져 뜨거운 뿌리가 되고 흙 속에 흙으로 부서져 고요한 땅울림이 되는지 새벽 강물보다 먼저 일어나 나를 흘러간 우물을 들여다보면 안다.
아, 침묵보다 더 고요한 말씀으로 묵은 귀를 씻는 내 비밀한 당신.
구연배 시인 / 훈계
가볍게 드나들 것.
소박하지만 난 늘 실패다. 집으로 돌아올 땐 주머니 가득 구겨진 지폐와 온기 없이 나눈 차가운 악수 그리고 한 없이 얇은 희망 부스러기들뿐 깔끔하게 오늘 하루와 결별하는 데 실패했다. 주머니가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 종잇장처럼 가볍게 나를 내려놓고 싶다. 더 크고 넓고 높은 것을 쫒아 정신 없이 세상을 구겨 넣는 자신과 몇 번이나 마주했던가. 이젠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겨우 한다는 짓이 구석진 방에 퍼질러앉아 구겨진 지폐를 다려 통장에 담고 서늘해진 손등을 비벼 온기를 충전하고 은총에 눈감아 버리고 희희낙락! 목숨치고는 실로 가소롭고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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