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홍재운 시인 / 라훌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7.

홍재운 시인 / 라훌라

 

 

 라훌라! 네 콧수염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뿌연 언덕은 흘러내리고 어제 읽었던 풍경이 떠나고 라훌라! 소떼를 본다 지붕 위에 앉아 지나가는 연기가 되어 천 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옥상이야, 아홉 살 소년이 지나가며 손을 흔들었지 얼굴이 지워진 염소의 수염 에서 나뭇가지가 걸어오네 보이지 않는 신발, 라훌라 너를 재우고 우리 먼 길을 가자 수면이 차오른다 오지 않는 밤을 깨우며 의식을 폭식하면서 늙어가는 라훌라! 잡을 수 없는 라훌라! 종이 봉지를 통과하는

 

 나는 내가 아니고 네가 아닌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라훌라! 꿈꾸고 있니? 냄새가 오지 않아, 어둠은 핏빛으로 피어나고 너는 아픈 경전이고 바람 이 지나간 늪이야 끝나지 않는 기둥이야, 라훌라! 눈 뜨지 마라 멈추지 마라 라훌라! 작은 환승으로,

 

 도움이 필요해 아기들이 잠들어 있단다

 당나귀처럼 걸어가는 라훌라야 늑대의 귀로

 여긴 밤이야

 물이야

 손가락이 없는 나라, 알고 있니?

 종소리처럼 아픈, 정신 병동

 라훌라야 저것 봐, 흰 활주로가 열리고 있잖니

 

-제12회 이상시문학상 수상작품 중 한 편

 

 


 

 

홍재운 시인 / 밀서

 

 

 대화를 나누었다 깜빡 눈이 아픈 날 새들은 날아가는 중이라고 나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말랑하게 부푼 빵을 펼치고 있었다 의자가 사라지면 사라진 잠이나 이상한 노래 같은 "누가 내 문에 종 을 달아요" 바닥이 보일까 벽 너머 벽으로 타오른 그 밤에서 "잘 될 거야 잘할 거야" 깡통처럼 울렸다 나는 들리지 않는 사람을 열고 흩어지는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종이었다

 국화꽃이었다

 

 도로엔 터진 글자들이 다른 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페이지를

 열고

 

 그날 눈부신 역광이었다가

 그날 읽을 수 없는 겨울이 오고

 

 


 

홍재운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2005년 계간 《시와 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정자역 지나 오리역에도 비가 흐른다』와 『붉은 뱀을 만나다』 『오늘 비가』 『안녕, 푸른 고래 수염』이 있음. 제12회 이상시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미디어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