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강경호 시인 / 아버지의 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8.

강경호 시인 / 아버지의 이

 

 

뿌리 드러낸 고목처럼

하나 남은 아버지의 이,

우리 가족이 씹지 못할 것을 씹어주고

호두알처럼 딱딱한 생 씹어 삼키기도 했던

썩은 이 하나가

아직도 씹을 무엇이 있는지

정신을 놓아버린 채 잠 속에서도

쓸쓸하게 버티고 있는가

 

- 시집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강경호 시인 / 눈

 

 

눈이 부드럽다고

눈이 포근하다고

 

처음에는 그랬지

짓밟지 마라

 

저 빛나는 殺意

너를 쓰러뜨리리라.

 

-시집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강경호 시인 /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

 

 

영신당靈神堂

이사간 마당 한켠

비에 젖은 부처님 하나

가느다란 미소 짓고 있다

대웅전 높이 앉아있던 존귀한 몸이

오늘은 옆구리가 찢겨진 채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다

부처님은 버림받을 줄 몰랐는데

부처님에 대한 관념을 부수기라도 하려는 듯

찢겨진 부처님 몸속으로

새들이 스스럼없이 비를 피한다

높고 고고한 지존의 자리에서 내려와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

철없는 나를 닮았다.

 

 


 

강경호 시인

1958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졸업.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77년 월간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으로 『언제나 그리운 메아리』 『알타미라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 『휘파람을 부는 개』 『함부로 성호를 긋다』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등이 있음. 2010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현재 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겸 주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출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