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서 시인 / 고요했으면
사무실 앞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출근부터 요란한 소음과 함께 근무 중이다. 두드리고 긁히고 떨어지는 소리로 뼈를 만들어 층을 높혀가고 있다 마디가 하나 더 생길 때마다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창조는 고요를 깬다
인부들이 빠져나간 주차장은 쓰레기가 많다 여러번 부탁 했지만 소용이 없다 소음만큼이나 당당하다 퇴근길에 차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수납장에서 보온병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파트로 퇴근을 한다 소리로 지어진 아파트는 풍금 건반을 닮았다 고요한 세상은 이미 틀렸다 층간소음으로 싸움을 하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 되었다
김영서 시인 / 당신의 그림자
어르신이 한자리를 계속 쓸어내고 있다 쓰레받기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희미해진 노안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자다 그림자도 턱이 있고 굴곡이 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림자가 구부정하다 평생 한곳을 응시하고 살아왔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곳에서 그림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허리를 펴 보는데 탄력이 느껴진다.
한여름 느티나무 그늘 속에서 담소를 즐기고 있다 그림자 하나 숨겼는데 이렇게 시원하다 모두가 그늘 속에 그림자를 숨겼다
그림자 밟기 놀이를 했다 나 살려라 하고 도망 다녔다. 밟힐 듯하면 당신의 속으로 숨어들었다 잡아당기는 힘이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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