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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경덕 시인 / 만가(輓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8.

마경덕 시인 / 만가(輓歌)

 

 

 그 소리는, 이슥도록 갯가를 떠돌다가 아스라이 멀어졌다

 

 산동네에서 아랫마을로 내려와 밤바다를 철썩이며 선잠을 흔들던 청승맞은 그 기운은 언젠가 밤길에서 만난 혼불처럼 어둠의 틈새로 사라지고

 

 어느 순간 소리에 꼬리가 돋아 그 꼬리를 붙잡고 가늘게 명줄을 이어 갔다

 

 주거니 받거니

 물보라를 일으키는 애끊는 리듬은,

 

 풍랑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종오 엄마가 다리 뻗고 바닥을 치며 울던 젖은 곡조여서 사무치고 사무치는 것이었다

 

 누구일까

 폐병쟁이 황 씨, 노름쟁이 곰보 천 씨, 지게꾼 학출이 아버지도 그 길을 따라갔는데

 

 또 누구일까

 

 날이 밝으면

 집 앞을 지나가던 꽃상여와 꽃잎처럼 붉은 울음과 노잣돈 없어 못 간다는 요령 소리가 귓전에 매달려

 

 어린것이,

 세상을 다 살았다는 얼굴로 눈물을 찔찔 흘리던 밤이 있었다

 

 


 

 

마경덕 시인 / 측백나무 서재

 

 

황금측백나무는 책꽂이 형식

그 앞에 서면 마치 서재 같다는 생각,

제목만 보여주는 가지런한 책들처럼

줄기에 수직으로 꽂힌 납작한 이파리들 모두 측면이다

 

손을 밀어 넣기 좋은 딱 그만한

틈과 틈, 시집 한 권 몰래 빼낸 자리 같다

 

천지天地를 짓던 셋째 날

섬세한 잎맥도 그리고 잎새 둘레 톱날무늬도 새기느라

하나님은 돋보기까지 찾아 쓰셨다

 

돌려나기 뭉쳐나기 어긋나기 마주나기, 잎차례도 정해

조각조각 그늘까지 붙여 태어난 나무들

 

천 가지 만 가지 달라야하니 얼마나 머리가 아프셨을까

 

잠시 무릎을 펴고 둘러보니 사방천지

가로가로가로가로가로……

 

문득 생각을 뒤집고 측백나무를 설득했을 것이다

책 한 권 없는 부자보다 책이 넘치는 가난한 시인을 사랑한다고

황금이란 호를 덤으로 얹어

 

하나님은 그때 각별한 시 한 편을 측백나무에 꽂아두셨다

그리고 나는 그 시를 필사 중이다

 

 


 

마경덕 시인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신발論』이 당선. 시집으로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그녀의 외로움은 B형-新글러브 중독자』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북한강문학상 수상. 제18회 모던포엠문학상 수상. 두레문학상, 제2회 선경상상인문학상 수상. 현재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AK아카데미, 강남문화원 시 창작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