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운 시인 / 가면극
전 세계의 무대로 가면극이 펼쳐져요 벗는 배역은 no 눈만 보여주면 돼요 포옹도 no 목소리로 인식하죠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과 가면을 잊어서는 안돼요 가면이 없으면 무대에 나갈 수가 없어요 오늘 제 역할은 우체국 택배발송 앞에선 할아버지가 저울대 위에 박스를 올려놓자 직원이 보내실 물품이 뭐냐고 했죠 할아버지는 가면을 벗고,닭발모가지와 입마개라 했죠 직원이 가면을 벗지 말라고 했죠 가면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몇 번 NG를 내고 지적을 받네요 말할 때는 벗고,대화가 끝나면 입을 막고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무대는 뒤죽박죽
한소운 시인 / 달빛이 쓰고, 바람이 읽고
좀처럼 잠은 오지 않고 불도 켜지 않은 집안을 달빛이 지킨다
자정 무렵 지낸 제사상 다 치우기도 전에 자식들은 제 집으로 돌아가고 제사상 위의 밥그릇처럼 덩그러니 혼자 남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에게 달빛은 너무 환하다 지상의 모든 것 빠짐없이 꼭꼭 짚고 가는 달빛 그 위로 또 한 번 바람이 읽고 간다
그가 다녀간 날이다
-2019 한국시인협회 사화집『시인의 주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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