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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소운 시인 / 가면극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8.

한소운 시인 / 가면극

 

 

전 세계의 무대로 가면극이 펼쳐져요

벗는 배역은 no

눈만 보여주면 돼요

포옹도 no

목소리로 인식하죠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과

가면을 잊어서는 안돼요

가면이 없으면 무대에 나갈 수가 없어요

오늘 제 역할은 우체국 택배발송

앞에선 할아버지가 저울대 위에 박스를 올려놓자

직원이 보내실 물품이 뭐냐고 했죠

할아버지는 가면을 벗고,닭발모가지와 입마개라 했죠

직원이 가면을 벗지 말라고 했죠

가면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몇 번 NG를 내고 지적을 받네요

말할 때는 벗고,대화가 끝나면 입을 막고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무대는 뒤죽박죽

 

 


 

 

한소운 시인 / 달빛이 쓰고, 바람이 읽고

 

 

좀처럼 잠은 오지 않고

불도 켜지 않은 집안을 달빛이 지킨다

 

자정 무렵 지낸 제사상 다 치우기도 전에

자식들은 제 집으로 돌아가고

제사상 위의 밥그릇처럼 덩그러니 혼자 남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에게

달빛은 너무 환하다

지상의 모든 것 빠짐없이 꼭꼭

짚고 가는 달빛

그 위로 또 한 번 바람이 읽고 간다

 

그가 다녀간 날이다

 

-2019 한국시인협회 사화집『시인의 주소』에서

 

 


 

한소운 시인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1998년 《예술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그 길 위에 서면』, 『아직도 그대의 부재가 궁금하다』, 『꿈꾸는 비단길』 그리고 예술기행집 『황홀한 명작여행』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