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석 시인 / 눈길
금촌까지 이십 리 차는 눈길에 막혀 오지 않고 간혹 미끄러져 비칠대며 나는 눈사람이 되어 걷는다 길가 앙상한 코스모스도 눈꽃으로 새로이 만발하고 파주군 탄현면 성동리 임진강가 길이 끊겨 더 갈 수 없는 곳으로부터 자주 안경알을 닦으며 되짚어 돌아오는 것이다 무작정 막다른 곳 까지 갔다가 후퇴하며 다시 시작하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 하나 도무지 가름할 수 없는 세월 세밑의 어느 날 잿빛 하늘 자욱히 함박눈 춤추며 내리는데 뚜루루루 끼룩
기러기떼는 보이지 않고 울음 소리만 날아간다
최두석 시인 / 낡은 집
귀향이라는 말을 매우 어설퍼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다리를 저는 오리 한 마리 유난히 허둥대며 두엄자리로 도망간다.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그들의 딸이 사는 슬레트 흙담집, 겨울 해 어름의 집안엔 아무도 없고 방바닥은 선뜩한 냉돌이다. 여덟 자 방구석엔 고구마 뒤주가 여전하며 벽에 메주가 매달려 서로 박치기한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냇가 빨래터에서 오셔서 콩깍지로 군불을 피우고 동생은 면에 있는 중학교에서 돌아와 반가와한다. 닭똥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 나가 일당 서울 광주간 차비 정도를 버는 아버지는 한참 어두워서야 귀가해 장남의 절을 받고, 가을에 이웃의 텃밭에 나갔다 팔매질당한 다리 병신 오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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