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경 시인 / 먼 백 년
도시인들은 겨울이 되어도 포복을 멈추지 않는다.
구부린 손발로 철도 위를 할퀴며 달려도, 내일은 알 수 없는 블록, 당신은 언제쯤 도착하는 왼쪽 역일까, 폐허는 고립되고 폐허는 발광하고, 반란은 춘설처럼 운다.
속도는 실패한 증거물로써
두드린다. 뛴다. 깨진다. 지른다. 외친다. 어둠을 흰 이빨로 물어뜯는다. 뜨거운 단도며 과대망상에 빠진 겨울 행성, 몇몇 동사들이 당신의 먼 길을 거칠게 다루고
꿈은 얼음조각展 때때로 날카로운
고대 문서 칸에서 찾아온 뜨거운 해석이다. 살아남은 쥐들이 기차의 묵은 갈등을 여전히 갉고 대고, 백 년은 폭 설의 그림자였던가, 지나간 냉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눈 속을 맨발로 뛰는 흰 발이 되어
당신은 폐허를 달리는 얼룩말이 되겠다고 수첩에 적어둔다. 폭설 속에 벌판을 죽을 듯 가로지르는 일, 낭만적 유언이 될지는 모르나 살을 에는 숙명 아닌가.
철도는 도시인의 백년지기가 되어
힘들 때마다 부서진 발톱을 쳐든다. 우리는 어느 시대 국가이며 당신은 어느 땅에서 출토한 짐승일까. 불 켜진 백 년 역이 굵은 눈발 너머에서 손짓을 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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