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호 시인 / 다리 세 개 달린 탁자
하루 한 끼 정도는 같이 해요 탁자가 기울기 전까지는 서둘러 식사를 끝내요 노릿하게 잘 구워진 태양에 새가 앉았네요 삼족오라고 불러 달래요 샤토 디켐 한 잔과 열다섯 가닥의 바람이 절묘하게 새겨진 나이프 오늘의 특별요리는 북두칠성이네요 긴 막대 하나는 스페어로 가지고 다녔으면 해요 탁자가 기울면 그것이 필요할 거예요
열 살 적 생일 선물로 세 발 달린 개에 대한 설화를 만들었다 복을 가져다주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꾼이었던 아버지는 그해 가을 웃자란 새벽 까마귀를 따라가셨다 성격도 참 급하시다 우는 방법도 익히기도 전인데
태양의 흑점이 폭발할 때마다 알 낳는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미완성의 탁자에 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봐요 오늘따라 아이가 검은 콩자반을 칠칠맞게 뚝뚝 흘렸어요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요 이제 긴 수업을 마쳤어요
-시집 『기타와 바게트』 중에서
리호 시인 / 도배사가 된 시인의 유통기한
오늘은 도배지에 꿈을 입힐 차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 다락방에 앉아 가로가 긴 어머니를 열었다
개나리는 누가 입혔니 모르는 산모 질문에 배냇저고리를 만들다가 벽에 붙은 꿈을 보았다 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또 카드 한 장 붙이고
이번엔 누구 차례 지 한 사람씩 나오라고 해 꽃잎 뒤에서 손 내미는 늙은 재봉사가 된 화가
꽃밭이야 꽃밭 직업을 들키지 말기를 이렇게 많은 꽃집을 누가 만들어 놨니 카드에 써놓은 시가 맘에 안 들어 빗물은 새지 않았으면 좋겠어
화가가 된 도배사가 두통이 온 틈을 타 도배사가 된 시인이 토시를 꼈다 시계는 꽃집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것으로
불량 산소를 다 빼고 진공상태로 다락방에 올라갔다 귀를 막으면 파도를 만드는 어머니의 손가락
겨울은 바다지 바다는 열여덟 시간짜리 무료주차권 그래서 오늘은 며칠 된 시인의 꿈을 입힐래
-《시와사람》2022.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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