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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리호 시인 / 다리 세 개 달린 탁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4.

리호 시인 / 다리 세 개 달린 탁자

 

 

하루 한 끼 정도는 같이 해요

탁자가 기울기 전까지는 서둘러 식사를 끝내요

노릿하게 잘 구워진 태양에 새가 앉았네요 삼족오라고 불러 달래요

샤토 디켐 한 잔과 열다섯 가닥의 바람이 절묘하게 새겨진 나이프

오늘의 특별요리는 북두칠성이네요

긴 막대 하나는 스페어로 가지고 다녔으면 해요

탁자가 기울면 그것이 필요할 거예요

 

열 살 적 생일 선물로 세 발 달린 개에 대한 설화를 만들었다

복을 가져다주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꾼이었던 아버지는 그해 가을

웃자란 새벽 까마귀를 따라가셨다

성격도 참 급하시다 우는 방법도 익히기도 전인데

 

태양의 흑점이 폭발할 때마다 알 낳는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미완성의 탁자에 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봐요

오늘따라 아이가 검은 콩자반을 칠칠맞게 뚝뚝 흘렸어요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요

이제 긴 수업을 마쳤어요

 

-시집 『기타와 바게트』 중에서

 

 


 

 

리호 시인 / 도배사가 된 시인의 유통기한

 

 

오늘은 도배지에 꿈을 입힐 차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 다락방에 앉아 가로가 긴 어머니를 열었다

 

개나리는 누가 입혔니

모르는 산모 질문에 배냇저고리를 만들다가 벽에 붙은 꿈을 보았다

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또 카드 한 장 붙이고

 

이번엔 누구 차례 지 한 사람씩 나오라고 해 꽃잎 뒤에서 손 내미는 늙은 재봉사가 된 화가

 

꽃밭이야 꽃밭 직업을 들키지 말기를

이렇게 많은 꽃집을 누가 만들어 놨니 카드에 써놓은 시가 맘에 안 들어 빗물은 새지 않았으면 좋겠어

 

화가가 된 도배사가 두통이 온 틈을 타 도배사가 된 시인이 토시를 꼈다 시계는 꽃집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것으로

 

불량 산소를 다 빼고 진공상태로 다락방에 올라갔다 귀를 막으면 파도를 만드는 어머니의 손가락

 

겨울은 바다지 바다는 열여덟 시간짜리 무료주차권 그래서 오늘은 며칠 된 시인의 꿈을 입힐래

 

-《시와사람》2022.봄호

 

 


 

리호 시인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실천문학》 제3회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제3회 이해조문학상 수상.〈디카시작품상〉 수상. 시집 『기타와 바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