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돌 시인 / 유령 칸타타
봄이 오니 돈이 쓰고 싶네요. 뭘 좋아하세요? 장을 봐 드릴게요. 꽃 접시 몇 장도 사 왔어요.
휘어지는 선을 그릴 때 냄비를 올릴게요. 감자 먹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죽은 까마귀 울음이 담겨있나 보죠. 붓질이 핏줄을 끌어당겨요. 동생 결혼식에 화환이라도 보내고 싶었죠? 자줏빛 새순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막힌 물감인가 봐요. 종다리가 오른쪽 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꽃잎을 떨어뜨렸어요. 어떡하죠? 가스레인지 위에서 거품이 넘쳐 올라요. 당연히 덧대고 덧댄 자국으로 의심을 치료할 생각은 마세요. 넋이 끓고 있네요. 여백을 닦아드릴게요. 저기 저, 아몬드꽃* 펼쳐놓은 식탁 위에 고집을 켜 놓을게요. 프라이팬이 달아오를 때 머리카락 누들을 볶을게요. 감상이 눌어붙지 않게, 확고한 자살을 잡으세요. 귓바퀴 모양의 접시를 준비할 테니. 올리브 오일, 마른 허브, 후춧가루를 넣은 소스 위에 발작을 뿌려드릴게요. 숨지 마세요, 냄새를 벗어날 수 없잖아요. 밀밭 위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 당신의 마지막 비명은 무엇이었나요. 무릎 아래 권총을 숨기고 후루룩, 구름 섞인 소스가 흘러내리잖아요. 별이 빛나는 밤*에 먹어보는 우윳빛 파스타, 황홀하지 않은가요.
지금쯤 하늘로 날아간 접시들이 가끔씩 캐스터네츠 소리를 내고 있겠죠?
* 감자 먹는 사람들, 아몬드꽃, 별이 빛나는 밤 - 고흐의 작품 제목.
- 2014년 <시산맥> 봄호
금은돌 시인 / 당신의 소리
앞에 서지 않는 것은 저 멀리서 익어 가는 사과의 소리를 듣기 위함입니다
물방울이 열리는 것을 물방울 속에 물방울이 맺히고 물방울 속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소리는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달려옵니다
그 속에 숲이 있고, 버드나무가 놓이고 그 속에서 속의 길이 내어지는 것을
나무는 알아서 딱딱해집니다 "행복은 진한 농담일 뿐"
다만, 바깥의 사람들은 사과 향을 맡지 못합니다
세로로 찢기며 흘러내리는 노을
언제나 버드나무 잎을 들고 서 있겠습니다
당신의 바깥
독버섯이 피어 있었습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웅 시인(서울) / 패배자의 여름 외 1편 (0) | 2023.02.15 |
---|---|
강정 시인 / 음파 외 1편 (0) | 2023.02.15 |
서연우 시인 / 캐리커처 외 1편 (0) | 2023.02.15 |
리호 시인 / 다리 세 개 달린 탁자 외 1편 (0) | 2023.02.14 |
황학주 시인 / 사려니숲길을 가는 외 1편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