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갑 시인 / 시인 천상병
여비 없이 저승에도 못 가나 한걱정하던 그 사람
사실은 부자 중의 부자였습니다
총총한 밤하늘 걸어가서 우주의 등기부 등본 한 통 떼어 보니
아득한 우주가 다 그 사람의 집이고 그 사람의 정원입니다.
문창갑 시인 / 금과 틈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니 어라? 진열장 안 명품 고려청자들의 몸엔 다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금이 간 것은 명품이 아니라고 믿어온 내게 누군가 잘 일러 주었다
식은 테, 혹은 빙렬이라고 하는 금이 있기에 이 청자들은 영원히 명품이라고
또 언젠가는 북한산 산행길에 보니 어라? 고태 은은한 옛 성곽의 돌과 돌 사이엔 다 틈이 있었다
틈이 생기면 쉬이 무너진다고 굳게 믿는 내게 바람이 잘 일러 주었다
성곽의 숨구멍, 이 틈이 있기에 장구한 세월에도 성곽은 요렇게 건재하다고 인간들은 오늘도 금이가서 헤어지고, 틈이 생겨 무너지는데 알고 보니
저 자연에선
금이라는 것 틈이라는 것
엄청 좋은 것!
-시집『코뿔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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