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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창갑 시인 / 시인 천상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6.

문창갑 시인 / 시인 천상병

 

 

여비 없이

저승에도 못 가나 한걱정하던

그 사람

 

사실은

부자 중의 부자였습니다

 

총총한 밤하늘 걸어가서

우주의 등기부 등본 한 통 떼어 보니

 

아득한 우주가 다

그 사람의 집이고

그 사람의 정원입니다.

 

 


 

 

문창갑 시인 / 금과 틈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니

어라? 진열장 안 명품 고려청자들의 몸엔

다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금이 간 것은 명품이 아니라고 믿어온 내게

누군가 잘 일러 주었다

 

식은 테, 혹은 빙렬이라고 하는 금이 있기에

이 청자들은 영원히 명품이라고

 

또 언젠가는 북한산 산행길에 보니

어라? 고태 은은한 옛 성곽의 돌과 돌 사이엔

다 틈이 있었다

 

틈이 생기면 쉬이 무너진다고 굳게 믿는 내게

바람이 잘 일러 주었다

 

성곽의 숨구멍, 이 틈이 있기에

장구한 세월에도 성곽은 요렇게 건재하다고

인간들은 오늘도

금이가서 헤어지고, 틈이 생겨 무너지는데

알고 보니

 

저 자연에선

 

금이라는 것

틈이라는 것

 

엄청 좋은 것!

 

-시집『코뿔소』에서

 

 


 

문창갑 시인

서울 출생. 1989년 월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으로 <깊은 밤 홀로 깨어> <빈집 하나 등에 지고> <코뿔소> 등이 있음. 《작가연대》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