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빈 시인 / 슬픈 이력
밤새 도깨비 다녀갔나, 흰구름 머문 작은 호수 네 귀퉁이에 무뎌진 톱날로 서서 물속에 담긴 산마루 붙잡는다 호수에 흘러들어 찰랑이는 물결이 신축 아파트 발길에 막혀 포클레인 목놀림에 튕겨 나고 골짜기를 활개 치던 삯의 발톱과 흙먼지 딱지 진 너구리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 백운호수 물 위로 도망치다 멈춰 선 오리발 갈퀴만 얼음에 덮여 발자국으로 남는다 아무르 어느 숲 떠난 꼬까직박구리 5월이면 저 갯버들 가지에 앉아 지저귈까 새를 불러들이던 카페 창가에 앉아 잃버린 지도 찾는다 사람들이 눈 맞추며 '여기 땅값은 이미 오를 만큼 다 올랐대' 발자취 남기지 않은 채 출렁이며 달리는 자동차 물결 밤새 쪼아대는 새들의 별빛이 숨죽인다
-시집 《열 아홉번째 응접실을 나오며》
김해빈 시인 / 쫓기는 봄
어둠에 창백했던 계절이 마른기침 멈추고 어느새 부드러운 바람으로 달려와 서릿발에 젖은 낮빛을 꼭꼭 심는다 사부작대던 산줄기마다 익숙한3월의 노동에 봇물처럼 터지는 환호성 여기저기 나무를 쪼아대는 연둣빛 부리들의 살가운 메아리에 취해 무색모자 벗어버리고 초록에 지천으로 물들어갈 산 더디 올지라도 봄은 어긋나지 않는 약속이다
-시집 『1인치 나사를 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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