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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문규 시인 / 구절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7.

양문규 시인 / 구절초

 

 

환한 하늘이 꽃을 내리는가

 

천둥 번개 울다 간

천태산 여여산방

 

소담하게

꽃이 열린다

 

햇살, 햇살이

가장 환장하게 빛날 때

 

저 스스로 꽃을 던져

몸을 내려놓는

 

그 꽃무늬를

핥고 빠는 벌과 나비

 

툇마루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 들여다보는데

 

미루나무 이파리 우수수

허공을 날며

 

돌아갈 곳이 어딘가 묻는다

 

-문예지 『리토피아』 2012년 겨울호

 

 


 

 

양문규 시인 / 감을 매달며

 

 

어머니 툇마루에 걸터앉아

감 깎는다

족히 열접 넘어 보이는 감들

어머니 손끝에서 껍질 벗겨진다

나는 잘 깎인, 둥그런

감들 싸리 꼬챙이 꿰어 처마 끝에 매단다

시커먼 그을음뿐인

내 몸도 실은, 속살마저

가을볕으로 포개지는

연한 건시乾枾가 되고 싶다

헌 푸대자루에 담긴

저물대로 저문 어머니의 뼈같이

상강霜降 무렵, 허공 중에 매달리고 싶다

 

 


 

양문규 시인

1960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 청주대학 국문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학위 취득.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이 있음. 현재 계간 『시에』 편집주간,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대표. 대전대, 명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