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성 시인 / 영국사 은행나무
천 년을 건너온 한 노인이 있다 그 어떤 사랑이 천년을 견디게 했을까 그리움도 수위를 넘으면 노랗게 곪아 터지는지 세월이 다독여 이제 상처 아문 자리 덕지덕지 노란 딱지가 앉았는데 바람이 긴 혀로 환부를 핥으며 가고 있다
우수수 땅에 떨어지는 노란 피딱지
갑옷 노란 비늘 털어버리고 맨몸으로 젊은 노인 우뚝 선다 구멍 난 가슴에서 새로운 줄기 하나가 천태산 젖줄에 부리를 박는다 이제 세 개의 다리로 튼튼하게 서서 새 천 년쯤 더 견딜 수 있다고
옹이로 얼룩진 단단한 어깨 기대어 본다
-시집 <폼페이 여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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