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흠 시인 / 사랑은
사랑은 불면에 빠진 풀벌레를 깨우고 길 잃어 슬픈 종달새를 일으켜 일상에 지친 햇살을 깨웁니다
사랑은 끊임없는 변신으로 세상의 눈물을 털어주고 세상의 눈물을 털어주고 육신의 슬픔을 정화시킵니다
사랑은 이성과 지성과 신성을 넘어 순수로 무장한 정신과 정열이며 신에게 응전하는 인류의 도전장입니다
사랑은 그 님보다 좋은것이 없기에 분순한 세상의 언어를 배제하고 영혼의 빈 방을 꽃으로 가득 채웁니다
사랑은 시인의 가슴으로 익숙한 눈빛을 파고드는 만상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세심한 가슴으로 분열된 마음을 여과하여 생멸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를 품습니다
사랑은 늘 성실하며 그 경계가 없어 임 사랑하듯 그 님과 함께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박민흠 시인 / 연어
굽잇길 돌고 돌아 물의 뼈를 부수며 이녁까지 왔다. 평생을 울고 웃던 이역 땅을 버리고 한 숨에 돌아왔다. 이날저날 다 떼어버리고 남은 졸가리 같은 귀향길 갓바다를 벗어나니 한세월 숨죽이던 본능이 꿈틀거린다. 세월 탓인지 깊숙한 물에 익숙하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소금기 하나 없는 정결한 강물의 젖살을 더듬어본다. 물의 팽팽한 입자마다 제 몸을 터트리며 머릿골을 누른다. 밀교의 예언서에서도 고향 가는 길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침나절 비늘결처럼 몸 흔들던 물살이 거칠다. 강물의 발길질에 잔가시들이 부러진다. 살몸살에 어깨뼈가 와지끈 부서진다. 어제 얻어맞은 정강이가 시큰거린다. 말의 토막이 끊어지며 명치끝에서 숨이 멎는다. 간덩이에 숨겨놓은 힘을 꼬리에 모은다. 아등아등 물때설때의 흐름을 찾는 눈길이 바쁘다. 바다살이 몸때를 벗겨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철 지난 세월에 굳은 살이 박혀 고향 가는 길이 천리 길이다. 탄갈(殫竭)의 시간 점점이 흐르면서 몸 비늘 겹겹이 벗겨진다. 독 없는 몸 안에서 투명한 분홍빛 구슬들이 꿈틀거린다. 구슬 하나를 뽑아낼 때 마다 구부러진 주둥이, 사나운 이빨, 동료들은 눈 부릅떠 {악} 소리를 지르며 죽어갔다. 사랑을 위하여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해골산 위에 깃발을 꼽던 신의 피사체처럼 생명의 신비를 가르치며 죽어간 동료들의 주검 세상의 거친 때를 벗기며 생살 타는 냄새가 비릿하다. 아프리카 흰 코끼리가 마지막 숨을 태우고 있다. 불콰한 단풍잎 하나가 허공을 태우며 떨어진다. 나를 벗겨내는 일이 이다지 힘드니 물도 불타고 있다. 황혼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선지자처럼 서있는 나무들의 눈가에 차란차란 이슬이 맺힌다. 사랑한다는 일은 저리도 불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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