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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진성 시인 / 영국사 은행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8.

황진성 시인 / 영국사 은행나무

 

 

천 년을 건너온 한 노인이 있다

그 어떤 사랑이 천년을 견디게 했을까

그리움도 수위를 넘으면 노랗게 곪아 터지는지

세월이 다독여 이제 상처 아문 자리

덕지덕지 노란 딱지가 앉았는데

바람이 긴 혀로 환부를 핥으며 가고 있다

 

우수수 땅에 떨어지는 노란 피딱지

 

갑옷 노란 비늘 털어버리고

맨몸으로 젊은 노인 우뚝 선다

구멍 난 가슴에서 새로운 줄기 하나가

천태산 젖줄에 부리를 박는다

이제 세 개의 다리로 튼튼하게 서서

새 천 년쯤 더 견딜 수 있다고

 

옹이로 얼룩진 단단한 어깨 기대어 본다

 

-시집 <폼페이 여자> 2009년

 

 


 

황진성 시인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수학과 졸업.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폼페이 여자』(한국문연, 2009)가 있음. 화요문학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