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시인 / 할머니 듀오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할머니 두 분 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 하얗고 말간 얼굴로 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 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 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란가? 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 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 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 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 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 천만 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라고 그라요 목욕 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 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 깔깔깔 빛난다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에서
김영진 시인 / 황태
구워온 황태포 씹다 어금니 깨진다 황태가 날 깨문 것은 아닌지 오래 입은 청바지 주머니에 쪼개진 조각 밀어 넣는다 깨지는 건 그 무엇이든 짠한데 날 삼키고 달아난 황태 내 뱃속 어디 헤엄치는지 아랫배가 자꾸 가렵다 눈보라치는 거리 술 마신 황태도 비틀대며 휘젓고 다니나 볼록한 배가 한쪽으로 실그러지고 가렵다 눈발이 그물처럼 온몸 달라붙는 밤 바다에도 눈 내릴까 망에 잡힌 것은 어포만 씹는 난 아닌지 물고기 헤엄치듯 흔들거리며 걷는다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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