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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진 시인 / 할머니 듀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9.

김영진 시인 / 할머니 듀오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할머니 두 분

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

하얗고 말간 얼굴로

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

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

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란가?

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

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

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

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

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

천만 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라고 그라요

목욕 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

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

깔깔깔 빛난다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에서

 

 


 

 

김영진 시인 / 황태

 

 

구워온 황태포 씹다

어금니 깨진다

황태가 날 깨문 것은 아닌지

오래 입은 청바지 주머니에

쪼개진 조각 밀어 넣는다

깨지는 건 그 무엇이든 짠한데

날 삼키고 달아난 황태

내 뱃속 어디 헤엄치는지

아랫배가 자꾸 가렵다

눈보라치는 거리

술 마신 황태도

비틀대며 휘젓고 다니나

볼록한 배가 한쪽으로

실그러지고 가렵다

눈발이 그물처럼 온몸

달라붙는 밤

바다에도 눈 내릴까

망에 잡힌 것은

어포만 씹는 난 아닌지

물고기 헤엄치듯

흔들거리며 걷는다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에서

 

 


 

김영진 시인

1973년 전남 화순 출생. 광주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석사. 2017년 계간≪시와 사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2017년 제2회 전국공무원노동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광주 남구청 근무. 현재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