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을 시인 / 거울의 레트로
뭐랄까 태어났는데 게임 바탕화면 속 수만 번 긴 칼에 휘둘려 검은 숲에 던져졌다가 똑같은 모습으로 생성되지만 계속 자고 있는 캐릭터 뭐랄까 태어났는데 중세의 왕국 수백만 번 창에 휘둘려 핏빛 강물에 던져졌다가 똑같은 모습으로 생성되지만 계속 강물에 던져지는 캐릭터 뭐랄까 태어났는데 현대의 옥상 수천만 번 캘빈 총에 휘둘려 푸른 옥탑방에 쌓였다가 똑같은 모습으로 생성되지만 계속 석탄처럼 쌓여가는 캐릭터 햇살이 손등에 한 줄로 꽂히고 있다 처음의 작은 점
-시집 『빌어먹을 다짐들』 에서
정가을 시인 / 아는 얘기
물 한 컵 돌고 그다음 빨간 글씨 쓰인 투명 컵에 술이 채워진다 사람 수만큼 젓가락이 놓였다 오늘 조금만 마실 거야 내일 너무 힘들면 안 되니까 세 칸 기본 안주 접시 놓이자마자 잔을 들었다 비워진다 내부 민원이 더 힘든 거 알지 우리 멤버가 지금 너무 좋으니까 그리 알고, 채워진다 틈틈이 바람 좀 쐬어가며 일해 계속 앉아 있는 게 몸에 안 좋은 거 알지, 벙벙하게 채워지고 못 들을 척 비워지고 어제 그 할머니 어떻게 됐어 양로원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밥을 해 먹을 수 있지만 그게 안 될 때 가고 싶다고 혼자서 혼자로 살 수 없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요양원이에요 양로원에는 지금 가야 하고요 이야기하고 눈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웃다가 한숨짓고 이야기하고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니라고
-시집 『빌어먹을 다짐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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