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언휘 시인 / 울릉도의 꿈 그해 겨울 소녀는 봄을 꿈꾸었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도시의 거리를 거닐며 친구와 개나리꽃처럼 종알거리는 모습을 그렸다 그해 봄 파도는 섬을 향해 몰아쳤고 배는 떠나지 못했다 석 달이나 섬은 바다 안에 갇혔다 소녀는 대구로 진학하는 꿈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울릉도 그 안에 갇혔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파도라도 소녀의 꿈은 갇히지 않았다
박언휘 시인 / 처방전 가슴을 쥐어짠다는 이웃집 할머니에겐 심전도, 속이 따갑다는 박선생은 내시경, 기침 심한 한별이에겐 칭찬과 코푸시럽, 화를 못 다스려 속이 아픈 병원집 며느리는 차 한 잔과 하드록, 우울증에 빠진 몸짱 모델에겐 장미꽃과 바리움, 불면증 심한 취업 준비생 영준씨에겐 시 한 편과 자낙스, 유방 절제술로 한쪽 가슴이 없는 보람 엄마에겐 힘 있는 악수와 셀렌 Q…… 손을 씻고 가슴을 열고 늦은 밤 불빛조차 지친 진료실에서 나를 위한 오늘의 마지막 처방전을 쓴다 파릇한 시의 잉태를 위한, 건강한 출산을 위한, 습작(習作) 수액 주사 용량 제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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