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하 시인 / 불새가
사과나무를 태운다 사과를 그리며 난롯불을 지핀다 갈라진 틈새로 선홍 불이 파고든다 몸 부풀고 금이간다 수액을 짠다 사과를 갉아 먹던 새 둥치를 태우자 불새 한 마리 튀어나온다 홰치는 새 부리가 빨갛다 날개도 발가락도 붉은 몸 간혹 푸른 깃털이 얼비치기도 한다 맘껏 날갯짓이다 사과가 되지 못한 몸 파도를 탄다 겹겹 파도 파동은 파동을 밀고 문이란 문 다 열고 홰를 치던 불새, 새가 나온 사과나무의 몸은 결이 잘 펴진 흑장미 한 송이 피어나고 원 없이 타던 몸 불새가 되었다 장미가 되었다가
박산하 시인 / 다례茶禮를 올리는 밤의 높이
차 한 잔은 저쪽 강을 건넌 사람에게 건네는 연예편지다
삼십팔억 년 된 물을 끓여 사십억 년 된 흙을 구운 잔에 오천 년 된 찻잎을 우린다
차 한잔 합시다 하면 봄날, 산수유꽃 터지듯, 노란 물들 듯 종달새, 내 어깨 위를 치고 날아가듯 무거운 것들이 아지랑이처럼 건너온다 몸 풀리는 소리, 가뿐하다
손바닥 안의 호수 굽어진 표정이 남아서 막힌 말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연둣빛으로 물든 내장 화한 박하가 밀고 온다
-시집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천년의시작,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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